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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41 / 방산동
* 명칭 방산동 이명칭
개요 방산동(芳山洞)은 청계5가교차로에서 동남쪽으로 청계천과 동호로를 끼고 위치한다. 방산동의 동명은 부근에 있는 가산(假山) 또는 조산(造山)이라 부르던 곳에 심어져 있던 무궁화꽃의 향기에서 연유되었다. 이곳 청계천 변으로 1960년대 생겨난 평화시장이 길게 자리잡고 있다.
설명 청계5가교차로에서 동남쪽으로 청계천과 동호로를 끼고 위치하는 방산동(芳山洞)은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명철방(明哲坊)에 속했던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연방정(蓮芳町)·방산정(芳山町) 등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방산동이 되었다. 방산동의 동명은 부근에 있는 가산(假山) 또는 조산(造山)이라 부르던 곳에 심어져 있던 무궁화꽃의 향기에서 연유되었다. 예전에 방산동과 을지로5가를 이어주는 곳에는 오교(午橋)라는 다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 주변의 마을을 오교동(午橋洞)·오교다리라고 하였다. 오교 근방에서 소와 말이 거래되어 우교(牛橋)라고 했던 것이 한자가 비슷한 오교(午橋)로 되었다고 한다. 방산동 20번지와 종로5가 343번지 사이 청계천에는 마전교(馬廛橋)가 있었다. 마전교라는 이름은 이 다리 인근에 말을 매매하는 말시장이 마전(馬廛)의 역할을 한 데서 유래하였다. 앞에서 설명한 오교(午橋)의 유래 외에도 마전교에서 오교가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12간지(十二干支) 중 말을 오(午)라고 하는 데서 그 연유가 있다는 것이다. 방산동 4-96번지에는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인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호 성제묘(聖帝廟)가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관우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순수한 민간인에 의해 세워진 묘당(廟堂)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민속신앙 및 의식구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방산동 북쪽 청계천 변에는 1960년대에 생겨난 의류생산·판매시장인 평화시장이 을지로6가 방향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명철방(明哲坊) 일제강점기 연방정(蓮芳町)·방산정(芳山町) 1946 방산동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방산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방산동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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