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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40 / 태평로1가
* 명칭 태평로1가 이명칭
개요 태평로1가(太平路一街)는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서울도서관(구 서울시청사)까지 세종대로의 동·서쪽에 위치한다. 동명은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태평관(太平館)이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서학(西學), 덕안궁(德安宮), 흥천사(興天寺) 등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부민관(府民館), 경성부청사 등이 있었다. 현재 덕수궁과 서울시청이 자리하고 있고 그밖에 금융·언론·호텔 등의 주요건물이 늘어서 있어 ‘서울의 얼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설명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서울시청(구 서울시청사)까지 세종대로의 동·서쪽에 위치하는 태평로1가(太平路一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서부 여경방(餘慶坊)과 황화방(皇華坊)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태평통(太平通) 1정목(一丁目)으로 불리었다. 이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의 우리말 개정 원칙에 따라 태평로1가로 바뀌었다. 태평로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태평관(太平館)이 남대문 근처에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 초기에 설치된 태평관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고 유숙하게 하던 곳으로 현재 서소문동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북쪽 인근에 그 터가 남아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여러 기관들의 터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태평로1가 25번지 서울도서관(구 서울특별시청사) 근처에 조선시대 군기시(軍器寺) 터가 있고, 태평로1가 76-3 오양수산빌딩 앞에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인 사학(四學) 가운데 하나인 서학당(西學堂) 터가 있다. 현재 태평로1가 60번지에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사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원래 이 터에는 1396년(태조 5)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康氏)의 정릉이 조성되고 원찰(願刹)인 흥천사(興天寺)가 자리했었다. 1409년(태종 9)에 정릉을 현재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전하면서 홍천사도 정릉부근의 작은 암자를 지어 신흥사(新興寺)로 개명하고, 이 절의 건축자재 일부는 양주(楊州) 회암사(檜岩寺)로 옮겨갔다. 연산군 때는 사복시(司僕寺)의 관아 건물로 사용되다가 1510년(중종 5)에는 유생들이 불교 배척을 외치면서 방화하여 소실되었다. 이후 절의 대종(大鐘)은 광화문·창경궁 등으로 옮겨졌다가 현재 덕수궁에 보관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부는 경성에 대규모의 문화전당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1930년대 초반부터 구상했던 부립극장인 부민관(府民館)을 건립했다. 이 부민관 건물은 광복 이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현재 서울특별시의회 의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군기시가 있었던 태평로1가 25번지에는 서울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특별시청(현 서울도서관)이 있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경성부청사로 건축된 것이다. 경성부 청사위치를 이곳에 정한 것은 지형적으로 평면 위에 있는 ‘산(山)’자형이라 다른 지역보다 지반이 약간 높은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을지로와 남대문로 및 태평로를 잇는 삼각지대로서 일본인의 주요 상업 지역인 동시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소공동과도 연결되는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세종대로(구 태평로) 주변으로는 정부기관·금융사·언론사·호텔, 덕수궁 등의 주요 건물이 늘어서 있어 ‘서울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서부 여경방과 황화방에 속함 일제강점기 태평통 1정목으로 불림 1946 태평로1가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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