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36 / 장교동
* 명칭 장교동 이명칭
개요 장교동(長橋洞)은 청계천복원공사로 새롭게 놓인 장통교와 삼일교 사이의 남쪽에 위치한다. 장교동 동명은 청계천에 놓여있던 장통교(長通橋)의 줄인말인 장교(長橋)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한화빌딩, 장교빌딩 등이 위치한 청계천 주변으로 광장이 조성되어 있어 직장인·시민들의 휴식터가 되고 있다.
설명 청계천복원공사로 새롭게 놓인 장통교와 삼일교 사이의 남쪽에 위치한 장교동(長橋洞)은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대평방(大平坊)과 훈도방(薰陶坊)의 일원이었던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장교정(長橋町)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장교동이 되었다. 장교동 동명은 청계천에 놓여있던 장통교(長通橋)의 줄임말인 장교(長橋)에서 유래되었다. 장통교는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에 있던 다리로 이 근처에 ‘장찻골’로 불리어지는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장찻골 다리’라고도 불렀다. 또는 이 다리 부근에 긴 창고가 늘어서 있어 장창교(長倉橋)라고도 하였다. 장통교는 백악산과 인왕산 방면의 물이 우회하고 꺾여져 지나오다가 이 다리를 지나면서 남대문과 남산 방면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천까지 합하여 비로소 일직선으로 오간수문(五間水門)을 지나 영미교(永尾橋) 방면까지 물 흐름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길게 통한다는 뜻의 장통교(長通橋)가 되었고 줄여서 장교(長橋)라고 하였다. 다리의 서쪽 기둥에 ‘신미개조(辛未改造) 기해개조(己亥改造)’의 8자가 새겨져 있었다. 장교동 63-1번지에는 1977년에 지방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된 한규설(韓圭卨, 1848~1930) 대감가가 있었다. 이집은 을사늑약 체결시 끝까지 반대하여 파직당한 한규설이 1890년 무렵 살았던 집으로, 장교동 일대의 재개발로 집이 철거되자 국민대학교에서 매입하여 1980년 12월에 대학교 내로 이건(移建)하고 본래의 모습을 보완한 후에 현재 명원민속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한화빌딩, 장교빌딩 등이 위치한 청계천 주변으로 광장이 조성되어 있어 직장인·시민들의 휴식터가 되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대평방(大平坊)과 훈도방(薰陶坊)의 일원 일제강점기 장교정(長橋町) 1946 장교동(長橋洞)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장교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교동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