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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31 / 삼각동
* 명칭 삼각동 이명칭
개요 삼각동(三角洞)은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대평방(大平坊) 일부였던 곳으로 현재 청계천 광교와 장통교 남쪽의 삼각형 형태의 지역이다. 삼각동의 동명은 이곳의 지형이 서쪽은 넓고 동쪽으로 가면서 좁아지는 삼각형으로 생긴 데서 유래하였다. 삼각동 7-1번지에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터 표지석이 있다.
설명 청계천 광교와 장통교 남쪽의 삼각형 모양의 삼각동(三角洞)은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대평방(大平坊) 일부에 속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에 삼각정(三角町)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중구 삼각동이 되었다. 삼각동의 동명은 남대문로와 청계천을 끼고 있는 이곳의 지형이 서쪽은 넓고 동쪽으로 가면서 좁아지는 삼각형으로 생겨서, 일제강점기에 지형의 특성에 따라 삼각정이라고 명명한데서 유래 되었다. 예전에 경기빌딩(삼각동 104) 남동쪽에 곡교(曲橋)가 있었는데, 굽어진 목에 다리가 있어서 ‘굽은 다리’ 혹은 ‘곱은 다리’로 불렸으며 광교(廣橋)와 청계천(淸溪川)의 이름을 따서 광청교(廣淸橋)라고도 하였다. 또한 구 조흥은행 본점(삼각동 66-1, 현 신한금융그룹) 뒤쪽에는 조선시대 관아인 사자청(寫字廳)이 있어서 사자청동이라고 했다. 사자청은 규장각(奎章閣)과 숭문원(崇文院)에 속한 관아로 외교문서와 국가문서를 정서(正書)하던 사자관(寫字官)이 근무하던 곳이다. 삼각동 36-2번지에는 조흥은행관리가(朝興銀行管理家)가 있었는데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건(移建)되어 현재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0호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三角洞 都片手 李承業 家屋)으로 관리되고 있다. 삼각동 7-1번지에는 1910년에 최남선(崔南善)이 《동국통감(東國通鑑)》을 비롯한 한국 고전 20여종을 간행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대평방의 일부에 속함 일제강점기 삼각정으로 불림 1946 삼각동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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