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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30 / 무교동
* 명칭 무교동 이명칭
개요 무교동(武橋洞)은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서부 여경방(餘慶坊)·황화방(皇華坊)과 남부 광통방(廣通坊) 중부 서린방(瑞麟坊) 각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현재 청계천 모전교 남쪽, 무교로 좌우 지역이다.
설명 청계천 모전교 남쪽, 무교로 좌우 지역인 무교동(武橋洞)은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서부 여경방(餘慶坊)·황화방(皇華坊)과 남부 광통방(廣通坊) 중부 서린방(瑞麟坊) 각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무교정(武橋町)이라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중구 무교동으로 개칭되었다. ‘무교동’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이 부근에 무기 제조 및 관리를 맡아보던 군기시(軍器寺)라는 관아가 있었는데, 이를 모전교(毛廛橋) 부근에 있던 모교동(毛橋洞)과 구별하기 위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동명(洞名)의 유래가 된 군기시는 서울특별시청과 한국프레스센터 자리에 있었다. 조선 태조 때 고려시대의 제도를 따라서 한성부 서부 황화방에 군기감(軍器監)을 두었는데, 그 뒤 1466년(세조 12)에 군기시라 개칭하였다. 조선 개국과 함께 고려 말에 화약·화포의 제조로 왜구 소탕에 공이 컸던 최무선(崔茂宣)이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로, 그의 아들 최해산(崔海山)이 부정(副正)으로 있었다. 화약을 취급하던 군기시는 1884년(고종 21)에 기기국(機器局)에 합쳐졌고,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에 의하면 군기시 안에 연못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580년(선조 13) 5월 어느 날, 이 연못에서 갑자기 물줄기가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그로부터 14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현재 청계천과 청계광장 주변으로 각종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서 있고, 해마다 다동(茶洞)과의 인접지점인 전통음식 관광특구 문화거리에서 다동·무교동 음식문화 가을대축제가 열리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서부 여경방(餘慶坊)·남부 광통방(廣通坊) 등에 속함 일제강점기 무교정으로 불림 1946 무교동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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