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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29 / 명동2가
* 명칭 명동2가 이명칭
개요 명동2가(明洞二街)는 명동길 남쪽에 위치한다. 명동의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의 행정구역명인 남부 명례방의 ‘명(明)’자를 딴 것으로 원래 명례방 또는 명례방골이라 하다가 줄여서 ‘명동’이라고 된 것이다. 이곳에는 명동대성당,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천주교서울대교구청, 주한중국대사관, 한성화교소학교, 유네스코회관, 눈스퀘어(구 코스모스백화점) 등이 위치하고 있다.
설명 명동길 남쪽에 위치한 명동2가(明洞二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명례방(明禮坊)에 속한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명치정2정목(明治町二丁目)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명동2가가 되었다. 명동의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의 행정구역명인 남부 명례방의 ‘명(明)’자를 딴 것으로 원래 명례방 또는 명례방골이라 하다가 줄여서 ‘명동’이라고 된 것이다. 명동2가 1-1번지 일대에는 사적 제258호인 명동성당(明洞聖堂)이 위치한다. 명동성당은 1894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898년에 완성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교회당이며 순수한 고딕식 구조로 지어졌다. 원래 명동성당 터는 조선 후기 순교한 김범우(金範禹)의 집터로 초기의 천주교회당으로 쓰였던 곳이다. 예전부터 명동성당이 위치한 고개 일대를 북달재[鐘峴]이라고 했는데 그 까닭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가 이곳에 진을 치고 시각을 알리기 위해 남대문에 있던 종을 옮겨 달아서 이처럼 불리게 되었다. 북달재에는 조선시대에 시조작가로 유명한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살았던 집터가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覺)》에 윤선도의 집이 제비 형국의 명당이라 했으며 영조 때에는 허목(許穆)의 집이 되어 그가 직접 쓴 ‘여산부동(如山不動)’이라는 네 글자를 주연(柱聯,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으로 걸었는데 비바람을 맞아도 지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명동2가 83번지 일대에는 주한중국대사관이 위치하고 있다. 1992년 8월 24일 이전까지에는 중화민국(대만)대사관이었으나 대한민국이 중국(당시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체결하면서 대만대사관은 철폐된 것이다. 이 터는 흥선대원군 집권 때 천주교를 박해했던 포도대장 이경하(李景夏)가 살던 낙동 집터였다. 어찌나 혹심하게 천주교인을 살육하였던지 울던 아이도 ‘낙동대감’하면 울음을 멈추었으며 바로 그의 저택에 잡아들여 고문했기에 염라대왕을 빗대어 염라대감이라고도 했다. 이곳에 중국대사관이 자리하게 된 것은 임오군란 후 서울에 청나라군이 주둔하면서 청국상무총판 진수당(陳樹堂)이 이곳 일대를 점유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의 후임으로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총리아문(總理衛門)이 되면서 집을 개축하고 10여 년간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였다. 명동2가는 오래전부터 서울의 중심지이자 번화가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형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중심가로서의 면모에 손색이 없다. 명동1가와 더불어 대형상가와 고급 의류·화장품점들로 가득하여 쇼핑을 즐기는 중국인·일본인 등 해외관광객들과 청춘남녀의 만남의 장소로 항상 인파가 넘치고 있다. 이곳에는 명동대성당,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천주교서울대교구청, 주한중국대사관, 한성화교소학교, 유네스코회관, 눈스퀘어(구 코스모스백화점) 등이 위치하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명례방(明禮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명치정2정목(明治町二丁目) 1946 명동2가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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