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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28 / 명동1가
* 명칭 명동1가 이명칭
개요 명동1가(明洞一街)는 명동길 북쪽에 위치한다. 명동의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의 행정구역명인 남부 명례방의 ‘명(明)’자를 딴 것으로 원래 명례방 또는 명례방골이라 하다가 줄여서 ‘명동’이라고 된 것이다. 이곳 일대는 대형상가와 고급 의류·화장품점들로 가득하여 쇼핑을 즐기는 중국인·일본인 등 해외관광객들과 청춘남녀의 만남의 장소로 항상 인파가 넘치고 있다.
설명 명동길 북쪽에 위치한 명동1가(明洞一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명례방(明禮坊)에 속한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명치정1정목(明治町一丁目)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중구 명동1가가 되었다. 명동의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의 행정구역명인 남부 명례방의 ‘명(明)’자를 딴 것으로 원래 명례방 또는 명례방골이라 하다가 줄여서 ‘명동’이라고 된 것이다. 명동은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지역 중의 하나로 유명하며 유행의 본거지이다. 이 지역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인들이 충무로·퇴계로 일대에 자리잡게 되면서 광복 전까지 기생집과 요리집이 즐비했던 거리가 되고, 퇴계로가 건설되면서 상가지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말부터 근대적인 도시풍의 그릴과 다실이 들어서면서 글과 그림, 사진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광복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집회소역할을 하게 되었다. 6·25전쟁으로 명동도 전화를 입었으나 곧 전쟁의 상처가 복구 되고 다방과 술집을 중심으로 문인·예술인들이 또다시 모여들었다. 1970년대에는 통기타와 청바지문화를 창출하고 1980년대에는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위한 열망으로 가득한 시위대가 점령함으로써 최루탄 가스가 사라질 날이 없었다. 1990년대부터 명동상가번영회가 평화의 거리로 선포하고 매년 상인들과 시민들의 한판 마당인 명동축제를 벌인다. 최근에는 명동 일대는 대형상가와 고급 의류·화장품점들로 가득하여 쇼핑을 즐기는 중국인·일본인 등 해외관광객들과 청춘남녀의 만남의 장소로 항상 인파가 넘치고 있다. 명동1가 54번지의 현 명동예술극장에는 시공관(市公館)이 있었다. 이 건물은 1930년대에 메이지좌[明治座]로 세워져 일류극장 역할을 하게 되었고, 광복 후에는 국립극장과 시민회관 역할을 하다가 한국증권거래소가 되었다. 이 증권거래소는 1979년에 여의도로 옮겨갔다. 명동은 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이전하기 전까지 각 은행지점과 단자회사·증권회사가 밀집해 있어 금융거리로 변모하기도 했었다. 현재도 많은 증권관련 업체의 빌딩들이 다수 들어서 있다. 명동1가 1-1번지에는 1922년에 한국여성의 계몽을 위해 세운 기독교여자청년회(현 서울YWCA)가 있다. 서울YWCA는 창설 당시 성경연구와 금주계몽, 공창제 폐지운동을 과제로 삼았고 1920~1930년대의 국산품 장려운동과 농촌계몽, 1950년대 전쟁미망인을 위한 사회사업, 1953년부터 친족상속법에서 남녀평등 확보노력, 1960년대부터는 소비자운동과 여성기술훈련, 1980년대에는 호화혼수 배격운동과 시범탁아소운영, 1990년대에는 바른 삶 실천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곳에는 명동예술극장·서울로얄호텔·ibis앰배서더 명동점·은행회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명례방(明禮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명치정1정목(明治町一丁目) 1946 명동1가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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