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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26 / 다동
* 명칭 다동 이명칭
개요 다동(茶洞)은 조선시대 한성부 남부 광통방(廣通坊)의 일부였던 곳으로, 현재 청계천 광통교 남쪽 지역이다. 다동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에 이 지역에 다례를 주관하던 다방(茶房)이 있어서 ‘다방골’로 불리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한국씨티은행·한국관광공사 등이 위치하고 있다.
설명 청계천 광통교 남쪽, 청계천로와 남대문로 주변에 위치한 다동(茶洞)은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광통방(廣通坊)의 일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다옥정(茶屋町)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중구 다동으로 개칭되었다. 다동은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다례(茶禮)를 주관하던 사옹원(司餐院) 소속의 다방(茶房)이란 관아가 이곳에 있어서 ‘다방골’이라 하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신라시대 때부터 승려들이 차를 마시던 풍습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무역이나 외국사신 접대로 차를 마시는 끽다(喫茶)의 풍습이 있었는데, 이 풍습이 조선시대에도 계승되어 왕이 중국사신을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에서 접견할 때 인사말이 있은 후 곧 다례가 있었다. 사옹원의 다방이 이 다례를 담당하였다. 조선 고종 때 국가에 진연(進宴)이 있을 때 평양·진주·대구·해주에서 기생들이 서울로 뽑혀 와서 이곳 다동에 모여 살았다. 이후 1909년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남도와 서도 기생들도 대거 상경하여 조합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당시 이곳 다동에 살던 기생들은 시조와 가사(歌辭)에도 뛰어나기로 유명해져서 ‘다방골 기생’이라는 애칭이 생겨나기도 했다. 다동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명한 ‘낙지골목’이 있었으나 재개발사업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1980년대에는 극장식 술집과 여러 오락장, 대중음식점 등이 성행하였으나 이 역시 강남지역이 개발되면서 옮겨갔다.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금융기관들이 밀집해 있었다. 현재는 예금보험공사·한국씨티은행·한국관광공사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해마다 무교동과의 인접지점인 전통음식 관광특구 문화거리에서 ‘다동·무교동 음식문화 가을대축제’가 열리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시대 한성부 남부 광통방(廣通坊)의 일부 일제강점기 다옥정(茶屋町) 1946년 다동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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