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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24 / 남대문로1가
* 명칭 남대문로1가 이명칭
개요 남대문로1가(南大門路一街)는 청계천 광교에서 을지로입구까지의 남대문로 동쪽 지역이다. 남대문로1가의 동명은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의 별칭인 남대문의 이름을 붙인데서 유래되었다.
설명 청계천 광교에서 을지로입구까지의 남대문로 동쪽 지역인 남대문로1가(南大門路1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광통방(廣通坊)·호현방(好賢坊)·태평방(太平坊)과 중부 장통방(長通坊)·서린방(瑞麟坊) 일원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이 종로에서 남대문을 향한 첫번째가 된다는 뜻으로 남대문통l정목(南大門通一丁目)이라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지금의 남대문로1가가 되었다. 남대문로1가의 동명은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의 별칭인 남대문의 이름을 붙인데서 유래되었다. 이 동의 서쪽을 지나는 폭 4Om, 연장 2km의 남대문로는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로 조선시대에는 광화문에서 숭례문으로 가려면 세종로 사거리에서 종각으로 구부러진 다음 이 길을 통해 숭례문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18세기경에 그린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와 1902년 발행된 〈서울지도〉등을 보면 지금의 태평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남대문로와 종로는 큰 길로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남대문로1가 북쪽 청계천에는 흔히 광교(廣橋)라고 불리는 광통교(廣通橋)가 있었는데 이는 광통방에 있는 큰 다리였으므로 처음에는 대광통교(大廣通橋)라고도 하였다. 특히 예로부터 서울에서는 큰 다리로 알려져 정윌 대보름이 되면 도성의 많은 남녀가 이곳에 모여 답교(踏橋) 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다리를 밟는 풍습인 답교놀이는 원래 중국 연경(燕京)의 풍속으로 우리나라는 중종 말부터 시작되었다. 서울의 여인들이 보름날 밤 종루(鐘樓)의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경소리에 맞추어 열두 다리를 지나다니면 그 해 열두 달 내내 다리가 아프지 않고 액도 면하면서 봄이 온다 하여, 보름날만 되면 달밤에 여인들이 다리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서울의 다리는 청계천에 많이 있었으므로 모두 청계천의 다리로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 이 광통교가 소광통교(小廣通橋)·수표교(水標橋)와 함께 답교놀이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였다. 남대문로1가는 조선 초기부터 시전(市廛)의 하나인 백목전(白木廛), 석전(席廛) 등이 있었고 현재도 금융기관을 비롯한 업무용 빌딩들이 밀집되어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광통방(廣通坊)·호현방(好賢坊)·태평방(太平坊)과 중부 장통방(長通坊)·서린방(瑞麟坊) 일원 일제강점기 남대문통l정목(南大門通一丁目) 1946 동명 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1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1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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