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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85 / 균역청 터
* 명칭 균역청 터 이명칭
개요 균역청(均役廳)은 조선 후기 균역법 실시에 따른 제반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만든 관청으로, 1751년(영조 27) 균역법 시행과 함께 설치하였다가 재정 절약을 위해 1753년(영조 29) 선혜청(宣惠廳)에 통합되었다. 균역청 터는 균역청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중구 퇴계로 173 일대에 해당한다.
설명 균역청(均役廳) 터는 조선 후기 균역법 실시에 따른 제반 업무를 맡아보던 균역청(均役廳)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173 일대에 해당한다. 1751년(영조 27) 균역법을 시행하게 될 경우 매년 2필씩 내던 베가 1필로 줄어들어 부족해질 재정을, 어염세(魚鹽稅)·선세(船稅)를 비롯 군역(軍役)대상자들로부터 선무군관포(選武軍官布)를 거둬 충당하게 하고, 또 토지대장에서 누락된 은루결(隱漏結)에 세금을 부과하여 보충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확보된 세금을 각급 관청에 예산으로 지급하게 하였는데, 이 모든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한 관청이 균역청이었다. 균역청 임원으로는 당연직인 의정부 정승이 겸하는 도제조(都提調) 3인, 호조판서를 포함하는 제조(提調) 3인, 현직 무신인 비변사 낭청(郎廳)을 포함한 낭청 3인으로 구성하고 서리(書吏)와 사역인을 두었다. 균역청은 줄여서 균청(均廳)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균역법을 실시함으로써 영조는 양민들의 부담이 반감되어 종래까지 왕권을 견제하던 신권을 억누르는 계기를 만들고 국가 재정의 균형을 바로잡게 되었다. 그러나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1753년(영조 29)에 균역청은 선혜청(宣惠廳)에 통합되었다. 균역청에서 논의된 제반 사항이나 문서들은 《균역청등록(均役廳謄錄)》, 《균역사목(均役事目)》 등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당시 급료를 받지 못한 구식 군인들이 선혜청 당상 민겸호(閔謙鎬)의 집을 습격하고, 선혜청 창고로 사용되던 전 균역청에 몰려들어 쌓여 있던 곡식을 분배하기도 하였다. 균역청이 있던 곳에 이후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되면서, 일본인 학교인 일출소학교(日出小學校)가 국유지에 세워졌다. 이 학교는 광복 후 일신국민학교로 변경되었다가, 1973년 학생 수의 감소로 폐교하였다. 일신국민학교가 있던 곳에는 현재 남산스퀘어빌딩이 서 있는데, 빌딩 앞 화단에 1986년에 설치한 균역청 터 표지석이 있다.
역사정보 1751 균역청 설치 1753 균역청 선혜청에 통합 1986 균역청 터 표지석 설치
시대분류 조선/1751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173(충무로3가 60-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3가
시작일(발생일) 17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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