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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19 / 황학동
* 명칭 황학동 이명칭
개요 황학동(黃鶴洞)은 청계천 남쪽, 지하철2호선 신당역과 도로교통공단교차로에 이르는 곳에 위치한다. 황학동의 동명은 옛날 대부분 논밭이었던 이곳에 황학(黃鶴)이 날아 왔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설명 청계천 남쪽, 지하철2호선 신당역과 도로교통공단교차로에 이르는 곳에 위치한 황학동(黃鶴洞)은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조선시대 한성부 소속 성외지역의 외곽으로 10리에 이르는 지역을 일컬음)였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황학동·신당리·신당정(新堂町) 등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모두 우리말로 바꾸면서 신당동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66년 7월 6일 서울특별시조례 제419호로 홍인동·무학동과 함께 황학동으로 법정동으로 분동(分洞)되었다. 황학동이라는 동명이 생긴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1936년에 만든 〈대경성정도(大京城精圖)〉에만 해도 이곳이 대부분 논밭이었는데 황학(黃鶴)이 날아 왔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신당제5동 관내에 옛날 자연부락의 하나인 백학동(白鶴洞)이 있기 때문에 황학동의 동명 유래를 가능하게 한다. 예전에 청계천 7가와 청계천 8가 중간에는 조선시대 때 가설된 영도교(永渡橋)가 있었는데 청계천 복개공사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다리는 동대문 쪽에서 왕십리 방향으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교통량이 많은 중요한 다리였다. 황학동 일대는 일제 중기까지 거의 논밭 이었으나 현재는 중앙시장(中央市場)과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중앙시장은 성동시장(城東市場)이라는 이름으로 1946년 5월 1일에 설치되었다. 이 시장은 미곡과 채소 등이 집산되는 도산매시장으로 예전에는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과 함께 3대 시장으로 손꼽던 대규모 시장이었으나 현재는 대형 백화점 등에 밀려 소시민들의 시장으로 밀려났다. 한편 청계천이 복개된 청계천로 길옆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길게 늘어서 있다. 이 아파트 뒤편에는 서울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황학동 중고품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구 왕십리길 연변이 채소와 곡류 중심시장이라면 청계천 연변의 이곳은 중고품시장으로, 블록별로 전자골목⋅가구골목⋅자동차부속품골목⋅의류골목⋅구두골목 등이 정해져 있어서 시민들의 발걸음을 끌게 하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 지역의 재개발로 말미암아 서울의 명소 중의 하나이던 황학동의 벼룩시장은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에 속함 일제강점기 황학동·신당리·신당정(新堂町) 등으로 불림 1946 신당동으로 개칭 1966 황학동으로 법정동 분리
시대분류 현대/1966(법정동 분리)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황학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황학동
시작일(발생일) 1966년(법정동 분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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