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16 / [행정동]신당5동
* 명칭 [행정동]신당5동 이명칭
개요 신당5동(新堂5洞)은 신당동 중에서 다산로 동쪽이자 왕십리길 남쪽 일대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할구역 명칭이다. 2013년 기준 신당5동의 면적은 0.39㎢이며 인구는 4,654세대에 1만 686명이 거주하고 있다.
설명 신당5동(新堂5洞)은 신당동(新堂洞) 중에서 다산로(茶山路) 동쪽이자 왕십리길(往十里) 남쪽 일대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할구역 명칭이다. 신당5동 동명은 조선시대 광희문(光熙門) 밖에 있는 신당(神堂)을 중심으로 많은 무당들이 모여 무당촌을 이루었으므로 신당(神堂)이라 불렀는데, 갑오개혁(甲午改革, 1894) 때 발음이 같은 신당(新堂)으로 바뀌면서 유래되었다. 신당5동이 속한 신당동은 조선 초기 한성부(漢城府) 성저십리(城底十里, 도성 밖 10리 이내에 해당하는 지역)에 포함되었으며, 1751년(영조 27)에는 남부 두모방(豆毛坊) 신당리계였다. 이어 1894년 갑오개혁 때 남서(南署) 두모방 왕십리계의 신당리동으로 되었다. 일제강점기 1914년에는 경성부(京城府) 구역 획정에 따라 고양군(高陽郡) 한지면(漢芝面) 신당리(新堂里)로 되었다. 1936년 4월 경성부 신당정(新堂町)이 되었으며, 1943년 6월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제도(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신당정은 성동구에 소속되었고, 1946년 10월 일본식 동명을 바꿀 때 성동구 신당동이 되었다. 신당5동은 1949년 이후에 구획된 성동구 신당동 지역 중의 문화동회(文化洞會) 일원과 유락동회(有樂洞會) 일부 지역이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 동제 실시 때 문화동사무소의 관할구역은 신당동 302-4번지를 기점으로 297-1번지 앞 도로를 따라 289-3번지를 경유하여, 282-22번지 앞 도로를 경계로 신당동 292-72번지 앞까지의 지역이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해 문화동사무소는 신당제5동사무소로 되었고,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되었다. 1980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1413호에 의해 신당제7동이 폐동되어 신당제5동과 제6동에 편입될 때 면적이 0.11㎢, 인구 7,339명이 전입되어 동의 규모가 늘어났다. 그 후 2013년 7월 20일 신당제5동이 신당5동으로 동명이 변경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당제1·2·3·4·6동이 각각 신당·다산·약수·청구·동화동(東化洞)으로 변경되는데 신당5동은 백학동(白鶴洞)과 유락동(有樂洞) 두 동명 후보에 대한 주민 선호도가 비슷하여 변경이 보류되었다. 2013년 기준 신당5동의 면적은 0.39㎢로 중구 전체면적의 3.9%를 차지하며, 등록사업체 수는 1,156개이다. 인구는 4,654세대에 1만 68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통반 조직은 20개 통(統) 137개 반(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당5동주민센터는 중구 다산로44길 85(신당동 150-7)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정보 1914 경성부 구역 획정에 따라 고양군 한지면 신당리로 지정 1936 경성부 신당정으로 일본식 동명 부여 1946 일본식 동명을 바꿀 때 성동구 신당동으로 명칭 변경 1970 문화동사무소를 신당제5동사무소로 변경 1975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 1980 신당제7동이 폐동되어 신당제5동과 제6동에 편입될 때 면적이 0.11㎢, 인구 7,339명이 전입 2013 신당제5동에서 신당5동으로 동명 변경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44길 85(신당동 150-7)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