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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14 / [행정동]약수동
* 명칭 [행정동]약수동 이명칭
개요 약수동(藥水洞)은 신당동 중에서 동호로 남쪽이자 다산로 동쪽지역인 응봉산(鷹峯山)기슭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할구역 명칭이다. 2013년 기준 약수동의 면적은 0.48㎢이며 인구는 7,947세대에 1만 9,267명이 거주하고 있다.
설명 약수동(藥水洞)은 신당동(新堂洞) 중에서 동호로(東湖路) 남쪽이자 다산로(茶山路) 동쪽지역인 응봉산(鷹峯山, 81m)기슭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할구역 명칭이다. 약수동의 동명은 버티고개의 약수(藥水)에서 유래되었다. 신당동 끝과 약수동이 이어진 부근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높고 큰 고개를 ‘버티고개’라고 한다. 옛날에는 길이 좁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도둑이 많았으므로 모양이 험악하고 마음씨가 곱지 않은 사람을 보면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이란 농담을 하였다. 옛날 순라(巡邏)꾼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하면서 도둑을 쫓았는데 그 말이 변하여 번티(番時), 버티, 버터 또는 한자명으로 부어치(扶於峙)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약수동이 속한 신당동은 조선 초기 한성부(漢城府) 성저십리(城底十里, 도성 밖 10리 이내에 해당하는 지역)에 포함되었으며, 1751년(영조 27)에는 남부 두모방(豆毛坊) 신당리계였다. 이어 1894년 갑오개혁 때 남서(南署) 두모방 왕십리계의 신당리동으로 되었다. 일제강점기 1914년에는 경성부(京城府) 구역 획정에 따라 고양군(高陽郡) 한지면(漢芝面) 신당리(新堂里)로 되었다. 1936년 4월 경성부 신당정(新堂町)이 되었으며, 1943년 6월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제도(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신당정은 성동구에 소속되었고, 1946년 10월 일본식 동명을 바꿀 때 성동구 신당동이 되었다. 약수동은 1949년 이후에 구획된 성동구 신당동 중에서 약수동회(藥水洞會) 지역이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 동제 실시 때 약수동사무소의 관할구역은 신당동 74-20번지 앞 도로를 횡단하여 369-28번지, 346-211번지 앞 도로를 따라 금호동을 경계로 신당동 374-20번지, 360-2번지, 354번지를 연결하는 도로를 경계로 중구 경계선 동쪽지역이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해 약수동사무소는 신당제3동사무소가 되었고,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되었다. 1993년 5월 3일 재개발사업 승인으로 1994년 4월부터 건물 1,830동을 철거하여 총 면적 2만 138㎡에 총 5,150세대의 아파트가 신축되었으며 2000년 6월 10일부터 입주가 시작되면서 이 지역의 인구가 늘어났다. 그 후 2013년 7월 20일 신당제3동이 약수동으로 동명이 변경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3년 기준 약수동의 면적은 0.48㎢로 중구 전체면적의 4.8%를 차지하며, 등록사업체 수는 834개이다. 인구는 7,947세대에 1만 9,267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통반 조직은 31개 통(統) 201개 반(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약수동주민센터는 중구 다산로 92(신당동 366-15)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정보 1914 경성부 구역 획정에 따라 고양군 한지면 신당리로 지정 1936 경성부 신당정으로 일본식 동명 부여 1946 일본식 동명을 바꿀 때 성동구 신당동으로 명칭 변경 1970 약수동사무소를 신당제3동사무소로 변경 1975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 2000 지역 재개발 완료로 인구 증가 2013 신당제3동에서 약수동으로 동명 변경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 92(신당동 366-15)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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