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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08 / 회현동2가
* 명칭 회현동2가 이명칭
개요 회현동2가(會賢洞二街)는 회현사거리에서 남산3호터널 입구에 이르는 소공로 좌우에 위치한다. ‘회현(會賢)’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이 일대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데서 회현동의 동명이 유래하였다. 현재 우리은행 본점,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설명 회현사거리에서 남산3호터널 입구에 이르는 소공로의 좌우에 위치한 회현동2가(會賢洞二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호현방(好賢坊)과 명례방(明禮坊)에 속했던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욱정2정목(旭町二丁目)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회현동2가로 되었다. ‘회현(會賢)’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이 일대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데서 회현동의 동명이 유래하였다. 예전부터 이곳 회현동2가와 회현동3가·남산동1가·남산동3가가 걸쳐있는 마을이 남산 북쪽기슭에 있어서, 남산골 또는 한자명으로 남산동(南山洞)이라하였다. 이 마을에는 가난한 선비와 청렴한 관원들이 살았다고 한다. ‘남산골 샌님’이란 말이 있는데 샌님은 생원님의 준말로, 과거에 낙방하고 가난에 오기만 남은 생원(선비)을 비꼬는 의미로 생긴 말이다. 이곳에는 복구형(伏龜形) 터와 재산루(在山樓) 터가 있다. 복구형은 타락동(회현동 일대의 옛 이름)에 있었던 집으로, 남산의 줄기가 내려와 거북이가 엎드린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조선시대 영의정 김육(金堉)의 손자 김석주(金錫胄, l634~1684)가 출생한 재산루는 집터의 모양이 범과 같고 범은 산에 있는 것이라 하여 그 집을 재산루라 하였다. 회현동2가에는 사적 제254호로 지정된 구 벨기에영사관 건물(1905년 준공)이 있었으나 1982년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전했다. 1918년까지 벨기에영사관으로 사용되던 이 건물은 그 후 요코하마[橫濱] 생명보험회사, 일본 해군성 무관부의 관저, 광복 후에는 미 해군헌병대에서 사용하다가 현재는 우리은행 본점,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호현방(好賢坊)과 명례방(明禮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욱정2정목(旭町二丁目) 1946 회현동2가(會賢洞二街)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2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2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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