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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07 / 회현동1가
* 명칭 회현동1가 이명칭
개요 회현동1가(會賢洞一街)는 퇴계로와 지하철4호선 회현역 남쪽에서 남산3호터널 입구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위치한다. ‘회현(會賢)’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이 일대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데서 회현동의 동명이 유래하였다. 2012년부터 회현동은행나무축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설명 퇴계로와 지하철4호선 회현역 남쪽에서 남산3호터널 입구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위치한 회현동1가(會賢洞一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호현방(好賢坊)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욱정1정목(旭町一丁目)이라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회현동1가로 되었다. ‘회현(會賢)’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이 일대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데서 회현동의 동명이 유래하였다.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충무로1가·남대문로3가와 더불어 장흥고(長興庫)가 있었던 지역으로 장흥곳골 또는 장동(長洞)이라 했다. 장흥고는 궁중이나 관아에 종이·유지(油紙)·돗자리 등을 공급하던 관아였다. 또한 옛날부터 남주북병(南酒北餠, 남촌에는 술이 좋고 북촌은 떡이 좋다)이라 표현할 정도로 술이 유명하며 주점이 많았는데 특히 남촌인 장동 일대가 유명하였다. 현재 남대문시장의 초입 부근이 되기도 하는 이 일대는 옛날의 명성과 걸맞을 만큼 각종 음식점이 즐비해 여전히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개항 후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많은 변모가 있었다. 대한제국 말기에 일본 거류민들은 숭례문에서 남산식물원까지에 이르는 남산 지역 30만평을 대한제국정부로부터 영구 무상 대여 받아 1910년 5월 29일에 한양공원(漢陽公園)을 조성하였다. 한양공원은 1900년대 초반 한국에 일본인 이주자가 늘어나면서 그들을 위한 위락시설의 하나로 조성되었다. 당시 이 공원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는데, 이 비석은 현재 남산3호터널 위 남산순환도로변에 있으며,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한양공원’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라고 한다. 회현사거리 인근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이 약 500년이 되는 은행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鄭光弼, 1462~1538)의 집터에 있었다. 이 은행나무와 관련된 전설이 하나 있는데, 어느날 정광필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서대(犀帶, 종 1품 이상의 관복에만 착용할 수 있는 각대) 12개를 은행나무에 걸게 되리라”라고 한 후에, 실제로 은행나무가 있는 이 집에서 12명의 정승의 배출되었다고 전해진다. 중구에서는 2012년부터 해마다 이 은행나무를 기리는 ‘회현동은행나무축제’를 열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호현방(好賢坊) 일제강점기 욱정1정목(旭町一丁目) 1946 회현동1가(會賢洞一街)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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