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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02 / 필동1가
* 명칭 필동1가 이명칭
개요 필동1가(筆洞一街)는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서쪽 입구의 퇴계로 남북쪽에 위치한다. 필동의 동명은 이곳을 붓골[部洞]이라 한데서 유래한다. 주변에 위치한 남산골 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 한국의 집 등을 향하는 방문객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설명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서쪽 입구의 퇴계로 남북쪽에 위치한 필동1가(筆洞一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훈도방(薰陶坊)에 속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대화정(大和町) 1정목(一丁目)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필동1가로 되었다. 필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 5부(五部) 중의 하나인 남부의 부사무소(部事務所)가 이곳에 있었으므로 부동(部洞)이라 하였는데, 이와 발음이 같은 음을 빌려와 붓골이라 하였다. 그후 부(部)의 음과 필(筆)의 훈이 서로 같기 때문에 붓골을 필동으로 표기하였다. 예전에는 이곳 필동1가에서 시작하여 충무로3가를 지나 청계천으로 들어가는 필동천(筆洞川)이라는 개천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 이곳에는 남학동과 함께 지금의 중등교육과정에 해당하는 4부학당의 하나인 남학(南學)이 있었다. 4학은 동·서·남·중학의 총칭으로 조선 초기에는 4부 학당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도 남학의 흔적은 남아 있어 깨진 기와조각이나 주춧돌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1939년 조선총독부 고시 제757호로 소화통(昭和通, 현재 퇴계로의 일제강점기 명칭)이 개설되면서 일대가 정비되었고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충무로·명동 일대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으며, 1952년에 퇴계로가 확장되면서 남학 터는 찾기 어렵게 되었다. 필동1가는 남산골 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 한국의 집 등이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방문객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훈도방에 속함 일제강점기 대화정 1정목으로 불림 1946 필동1가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1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1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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