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899 / 주자동
* 명칭 주자동 이명칭
개요 주자동(鑄字洞)은 퇴계로 지하차도 남쪽, 삼일대로 좌우에 위치한다. 주자동의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에 주자소(鑄字所)라는 관아가 있어 주잣골이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설명 퇴계로 지하차도 남쪽, 삼일대로 좌우에 위치한 주자동(鑄字洞)은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훈도방(薰陶坊)에 속하는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주정(鑄町)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중구 주자동이 되었다. 주자동의 동명은 이곳에 조선시대에 주자소(鑄字所)라는 관아가 있어서 주잣골이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주자소는 조선시대에 활자를 만들던 관아였는데 1403년(태종 3) 왕명에 의하여 주자소를 설치하고 승정원(承政院,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관청)에 소속시켰다. 1405년(태종 5)에 한양으로 다시 천도하면서 이곳 주자동에 주자소를 두었는데 1435년(세종17)에는 주자소를 경복궁 안으로 옮겼다가 궁중에서 활자 주조가 어려우므로 1460년(세조 6)에 교서관(校書館, 책을 만들고 관리하며 제사를 관장하고 축하전문을 보내는 것을 관장하는 기관)에 병합시켰다. 그 뒤 1794년(정조 18)에 다시 설치되어 교서관과 분리되어 규장각(奎章閣, 왕실 도서관이면서 학술 및 정책을 연구한 기관)과 함께 활자 간행기관으로 존속되었다. 1796년(정조 20)에는 구리로 큰 활자 19만자와 작은 활자 14만 여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정리자(整理字)라 한다. 1621년(광해군 13)에 권희(權喜)가 주선하여 편찬한 주자동의 지지(地志)인 《훈도방주자동지(薰陶坊鑄字洞志)》에 의하면 주자동은 기묘·을사사화 때 충절이 높았던 인물들이 많았고, 여씨향약(呂氏鄕約, 중국 북송 때 향촌을 교화선도하기 위해 만들었던 자치적인 규약)이 행해졌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 이 책에 보면 이 마을의 효자(孝子) 5명, 절부(節婦) 3명을 소개하고, 명신(名臣)으로는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조석문(曺錫文, 1413~1477), 세조 때 공신으로 좌의정을 역임한 권람(權擥, 1416~1465), 선조 때 영의정 이산해(李山海, 1538~1609)등 40명을 기록하고 있다. 주자동의 행정은 필동 주민센터에서 담당하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훈도방에 속함 일제강점기 주정으로 불림 1946 주자동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주자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주자동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