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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894 / [행정동]장충동
* 명칭 [행정동]장충동 이명칭
개요 장충동(奬忠洞)은 장충동1가·2가, 묵정동 일부 등 3개 법정동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할구역의 명칭이다. 2013년 기준 장충동의 면적은 1.36㎢이고 인구는 2,989세대에 6,296명이 거주하고 있다.
설명 장충동(奬忠洞)은 장충동1가·2가, 묵정동(墨井洞) 일부 등 3개 법정동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할구역 명칭이다. 장충동이라는 동명은 장충단(奬忠壇)의 이름을 따서 생겨났다. 장충단은 1900년 9월 고종(高宗)이 남소영(南小營) 자리에 사전(祠殿)과 부속건물을 건립하고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 때 순사(殉死)한 장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묵정동은 먹절골의 ‘감정우물’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에 먹절 또는 묵사(墨寺)로 부르던 절이 있어 마을 이름을 먹절골이라 하였다. 또 이 마을에 우물이 있는데 매우 깊어 늘 시커멓게 보이므로 감정우물 즉 묵정(墨井)이라 불렀다고 한다. 장충동 일대는 조선 초기에 한성부(漢城府) 5부(部) 52방(坊) 중 남부 명철방(明哲坊)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장충동1가 지역은 동서헌정(東西軒町), 장충동2가 지역은 서사헌정(西四軒町)이 설치되었고, 1946년 10월 1일 일본식 지명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 지역 일대가 장충동으로 이름 지어졌다. 광복 후 1946년 10월 장충동1가동회와 장충동2가동회로 바뀌어 각각 장충동1가, 2가 지역의 행정을, 묵정동은 1947년 말에 묵정동회가 설치되어 각각 그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였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한 행정동제 실시로 각각 장충동1가동과 장충동2가동이 되었고, 묵정동은 충무로5가와 함께 야현동(冶峴洞)의 관할에 편입되었다. 그러다 1980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413호에 의해 충무로4, 5가동의 관할구역 일부가 장충동으로 편입 조정될 때 묵정동 일부가 장충동 관할이 되었다. 이후 1985년 9월 1일 장충동 관할에 묵정동이 편입되면서 장충동 관할구역은 장충동1가, 장충동2가, 묵정동이 포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3년 기준 장충동의 면적은 1.36㎢로 중구 전체면적의 13.7%를 차지하며, 등록사업체 수는 844개이다. 인구는 2,989세대에 6,29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통반 조직은 9개 통(統)과 48개 반(班)으로 되어 있다. 장충동주민센터는 중구 장충단로8길 22(장충동1가 37-14)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정보 1910 고종이 을미사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장충단 설치 1946 일본식 동명을 우리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장충동으로 이름 지어짐 1955 장충동1가동, 장충동2가동이 되었고, 묵정동은 충무로5가와 함께 야현동의 관할에 편입됨 1980 충무로4·5가동의 관할구역 일부가 장충동으로 편입 조정될 때 묵정동 일부가 장충동 관할이 됨 1985 장충동 관할에 묵정동 편입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8길 22(장충동1가 37-14)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1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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