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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892 / 회현동3가
* 명칭 회현동3가 이명칭
개요 회현동3가(會賢洞三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호현방(好賢坊, 고종 때 회현방(會賢坊)으로 바뀜)에 속하는 지역으로 현재 퇴계로 남쪽, 지하철 4호선 명동역 부근이다. ‘회현(會賢)’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이 일대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데서 회현동의 동명이 유래하였다. 현재 뉴오리엔탈호텔과 88게스트하우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설명 회현동3가會賢洞三街)는 퇴계로 남쪽, 지하철 4호선 명동역 4번 출구 전방에 위치하는 곳으로, 조선시대 초기에는 한성부 남부 호현방(好賢坊, 고종 때 회현방(會賢坊)으로 바뀜)에 속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에 욱정3정목(旭町三丁目)이라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회현동3가로 되었다. ‘회현(會賢)’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이 일대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데서 회현동의 동명이 유래하였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타락골[駝酪谷]·타락동(駝酪洞)·낙동(酪洞)이라고 불렸는데, ‘타락동’은 남산 골짜기 곳곳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지금의 퇴계로 근방에서 합쳐져서 건천동(乾川洞) 방면으로 흐르기 때문에 이를 타락(駝酪, 소의 젖이나 그것을 살균하여 만든 음료로 보통 우유를 말함)에 빗대서 붙여진 동명이다. 옛날에 우유는 손님을 위한 접대용이나 왕실에나 진상하던 귀한 음식이었기에 남산 계곡의 물을 곧잘 우유에 비유하였다. 우유를 넣어 쑨 죽을 ‘타락죽’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왕의 잠행(潛行, 왕이 비밀리에 나들이하던 일)으로 종종 남산골 선비촌을 다녀오는 일들이 《조선왕조실록》이나 각종 문집류에 나타나는데, 이곳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멀리 경복궁에까지 들릴 정도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옛날부터 이 일대에는 많은 서생들이 모여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선조 때 문장가 고옥(古玉) 정석(鄭碩),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이경여(李敬輿) 등이 이 지역에 살았다. 현재 뉴오리엔탈호텔과 88게스트하우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호현방(好賢坊) 일제강점기 욱정3정목(旭町三丁目) 1946 회현동3가(會賢洞三街)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3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3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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