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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863 / 정조필 국화도
* 명칭 정조필 국화도 이명칭
개요 정조필 국화도(正祖筆 菊花圖)는 조선 정조가 직접 그린 국화도(菊花圖) 1폭으로서, 동국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국왕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설명 정조필 국화도(正祖筆 菊花圖)는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종이바탕에 수묵으로서, 크기는 세로 86.5cm 가로 51.3cm이다. 보물 제743호인 정조필 파초도(正祖筆 芭椒圖)와 재질이나 크기가 같아서 처음부터 쌍폭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국화는 서기 전 중국의 고전인 《초사(楚史)》《예기(禮記)》 등에 이미 언급되고 있다. 특히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시 〈음주(飮酒)〉의 소재로 등장한 이래 줄기차게 시인묵객들에 의해 상찬되어온 꽃이다. 한편 그림으로서는 당나라에서 화조화의 소재로 여러 다른 꽃들과 함께 그려진 이래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당당히 성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국화를 재배하였고 중국이나 일본에 신라국(新羅菊)·백제국(百濟菊)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전래된 당시 그림은 없으나 대체로 중국과 같은 양상으로 국화가 그려졌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청자나 분청사기에 들국화(野菊) 문양이 자주 사용되었다. 이 그림은 화면 왼쪽에 치우쳐 그린 바위와 잡풀 위에 세 방향으로 나 있는 세 송이의 들국화를 그린 것이다. 돌과 꽃잎은 묽은 먹으로, 국화잎은 짙은 먹으로 표현하여 구별하였는데, 이러한 농담 및 강약의 조화를 통하여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활달하고 힘찬 필치로 붓놀림의 속도감이 보이며, 서투른 듯 꾸밈없는 표현에서 화격(畵格)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국화에 바위를 곁들인 양식은 조선 말기 화단으로 이어져 허련(許鍊)·허형(許瀅) 부자와 김수철(金秀哲)·신명연(申命衍) 등을 비롯한 도식화된 청화백자의 문양으로도 등장된다. 꾸밈이나 과장 없이 화면을 처리한 점은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으로, 서화와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면모와 남종화의 세계를 잘 드러낸다. 조선시대 국왕의 작품으로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정조필 파초도(正祖筆 芭椒圖)와 함께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역사정보 1982 보물 제744호로 지정
시대분류 조선/1700년대 후반
주제분류 문화/회화, 서예, 서적(박물관소장품 제외)/초상화, 산수화, 풍속화등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1길 30(필동3가 26) 동국대학교 도서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3가
시작일(발생일) 170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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