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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80 / 조씨노기 마애각자
* 명칭 조씨노기 마애각자 이명칭
개요 조씨노기(趙氏老基) 마애각자(磨崖刻字)는 중구 필동로6길 30 공동주택과 바로 연접한 바위벽에 새겨진 글씨로, 이곳은 익종(翼宗, 1809~1830, 효명세자)의 장인인 풍은부원군(豐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이 세운 노인정(老人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 정자는 1894년(고종 31) 일본의 강요로 내정개혁 문제에 대해 3차례에 걸쳐 신정희(申正熙)와 일본공사 오토리 케이스케[大鳥圭介]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었던 곳이다. 정자는 사라지고 노인정 터 표지석이 남아 있다.
설명 마애각자(磨崖刻字)는 바위에 새긴 글씨를 뜻하는 말로, 조씨노기(趙氏老基) 마애각자는 중구 필동로6길 30의 아파트와 바로 인접한 바위벽에 새겨져 있는 ‘조씨노기(趙氏老基)’ 글씨를 가리킨다. 이곳은 익종(翼宗, 1809~1830, 효명세자)의 장인인 풍은부원군(豐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이 만든 노인정(老人亭)이 있던 곳이다. 조만영은 그의 딸이 익종의 왕비가 되고, 그가 낳은 헌종(憲宗)이 왕위에 오르자 동생인 조인영(趙寅永)과 함께 안동 김씨에 대립하여 세도정치를 한 인물이다. 이 노인정의 이름은 남쪽 하늘의 별자리인 노인성(老人星)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조만영이 만년에 이 정자에서 교유하던 이들이 관직에서 물러난 늙은 관료들이었던 데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노인정 주변은 풍양 조씨들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이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조씨노기 마애각자라는 것이다. 각자의 크기는 185×30㎝이다. 이 정자는 1894년(고종 31) 일본의 강요로 내정개혁 문제에 대해 7월 10일부터 15일까지 3차례에 걸쳐 내아문독판(內衙門督辦) 신정희(申正熙)와 일본공사 오토리 케이스케[大鳥圭介]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었던 장소로, 갑오개혁의 시발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 협상의 결과 조선이 일본의 내정간섭안을 거부하자 일본은 7월 23일 경복궁을 점령한 뒤, 서울의 조선병영을 습격하여 무장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데 걸림돌이 된 청과 전쟁을 시작하였다. 노인정은 지금은 사라져 없어지고,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6길 30 일대의 공동주택 진입로에 표지석만 남아 있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인물/기념비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6길 30(필동2가 134-2)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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