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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858 / 보협인석탑
* 명칭 보협인석탑 이명칭
개요 보협인탑(寶篋印塔)이란 탑 속에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을 안치해놓은 탑을 말한다. 이 탑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석조 보협인탑으로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설명 보협인탑(寶篋印塔)이란 탑 속에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을 안치해놓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탑 속에 이 다라니경을 넣어두고 공양하면 일체여래의 신력(神力)이 보호해주고 죄를 소멸하게 하며 공덕을 쌓아 성불이 될 수 있음을 설하고 있다. 이 탑은 돌탑이라고 해서 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탑의 형식은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인 형식과는 전혀 다른데, 중국 오월(吳越)이라는 나라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오월국의 마지막 왕인 충의왕 전홍숙(錢弘淑)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8만 4,000기의 탑에 나누어 봉안하였다는 고사를 본떠 금(金)·동(銅)·철(鐵) 등의 재료로 소탑 8만 4,000기를 만들고 그 속에 일일이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탑을 보협인탑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탑이 유일한 석조 보협인탑이다. 원래 이 탑은 천안시 북면 대평리 탑골계곡의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당시 절터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와 주춧돌의 일부, 기와조각들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되었으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복원된 탑의 현재 모습은 5개의 돌만 남아 있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인 형식과는 전혀 달라서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완전한 형태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뚜껑을 덮은 듯한 네모난 상자 모양의 돌 2개를 포개어놓은 후, 그 위로 귀를 세운 머리장식을 얹어놓은 모습이다. 불상이 새겨진 육면체 위에 사각형의 받침돌을 놓고, 다시 그 위에 육면체가 놓이는데 사면에 부처님의 전생설화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몸돌 윗면 중앙에는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둥근 사리구멍이 남아 있다. 당나귀 귀처럼 솟은 맨 윗돌에는 그 안에 석가의 일대기가 상·하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전면에 조각이 가득한 이 탑은 중국 보협인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며 외형도 거의 비슷하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보협인석탑으로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역사정보 1982 국보 제209호로 지정
시대분류 고려(추정)/미상
주제분류 문화/축조물/탑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1길 30(필동3가 26) 동국대학교 박물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3가
시작일(발생일)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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