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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856 / 조흡 사패왕지
* 명칭 조흡 사패왕지 이명칭
개요 조흡 사패왕지(曺恰 賜牌王旨)는 1401년(태종 1)에 당시 중훈대부(中訓大夫) 안산군지사(安山郡知事)로 있던 조흡(曺恰, 1365?~1429)에게 토지와 노비를 내린다는 왕지(王旨) 1매이다. 조선 전기의 문서양식 연구 및 인사행정제도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설명 왕지(王旨)란 왕의 뜻과 명을 적어 보내는 문서를 말하는 것으로, 1426년(세종 8) 이후부터는 교지(敎旨)라고 불렀다. 임금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품계·자격·시호 등을 명하는 문서로서 오늘날의 임명장·발령장·자격증과 같은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교지(敎旨)·관교(官敎), 대한제국 시기에는 칙령(勅令)이라고도 하였다. 왕지의 종류로는 사패왕지 이외에 고신·면역·합격 등의 왕지도 있다. 조선 초기 발급된 왕지로는 이외에도 태조 2~6년 사이에 도응(都膺)에게 발급된 것(보물 제724호), 태조 4~6년 사이에 김회련(金懷鍊)에게 발급된 것(보물 제438호), 조흡에게 발급된 것(보물 제897·898호)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사패왕지로는 이 문서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조흡 사패왕지(曺恰 賜牌王旨)는 1401년(태종 1)에 중훈대부(中訓大夫) 안산군지사(安山郡知事) 조흡(曺恰)에게 토지와 노비를 내린다는 왕지(王旨)이다. 조흡은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때 방원의 편에 서서 공을 세움으로써 공신이 되어 1401년(태종 1) 중훈대부(中訓大夫) 안산군지사(安山郡知事)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마침내 재상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양질의 장지 1매에 10줄에 걸쳐 초서로 쓰여진 이 왕지의 크기는 세로 80㎝ 가로 71.1cm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사(賜)’자를 한 자 높여 쓰고, 줄을 바꾸어 수급자인 조흡의 관등성명, 또 줄을 바꾸어 5줄에 걸쳐 지급 내용을 적고 있는데, 이두(吏讀)를 섞어 쓰고 있다. 다음에 줄을 바꾸어 ‘왕지안인(王之安印)’ 4자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이 문서의 작성 담당관 박석명(朴錫命)의 관등성명과 수결(手決, 도장 대신에 자필로 글자를 쓰는 것), 그리고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라는 새보(璽寶, 국새(國璽)의 다른 말로 국권을 상징하고 국가적 문서에 사용되던 인장(印章))가 찍혀 있다. 이 문서는 조선 초기의 성격과 특징을 그대로 지닌 왕지로서 고문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관제와 새보 사용의 변천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며, 본문에 쓰인 이두문은 국어연구에 참고자료가 된다. 현재 동국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역사정보 1986 보물 제899호로 지정
시대분류 조선/1401
주제분류 문화/회화, 서예, 서적(박물관소장품 제외)/교지류(왕이 신하들에게 내린 명령서)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1길 30(필동3가 26) 동국대학교 도서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3가
시작일(발생일) 14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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