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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855 / 조흡 고신왕지
* 명칭 조흡 고신왕지 이명칭
개요 조흡 고신왕지(曺恰 告身王旨)는 1409년(태종 9) 8월 10일 조흡(曺恰, 1365?~1429)에게 가정대부(嘉靖大夫, 종2품) 중군도총제부총제 겸 판군기감사(中軍都摠制副摠制兼判軍器監事)라는 벼슬을 내린다는 왕지(王旨) 1매이다. 조선 전기의 문서양식 연구 및 인사행정제도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설명 왕지(王旨)란 왕의 뜻과 명을 적어 보내는 문서를 말하는 것으로, 1426년(세종 8) 이후부터는 교지(敎旨)라고 불렀다. 임금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품계·자격·시호 등을 명하는 문서로서 오늘날의 임명장·발령장·자격증과 같은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교지(敎旨)·관교(官敎), 대한제국 시기에는 칙령(勅令)이라고도 하였다. 왕지의 종류로는 사패왕지 이외에 고신·면역·합격 등의 왕지도 있다. 조선 초기 발급된 왕지로는 이외에도 태조 2~6년 사이에 도응(都膺)에게 발급된 것(보물 제724호), 태조 4~6년 사이에 김회련(金懷鍊)에게 발급된 것(보물 제438호), 조흡에게 발급된 것(보물 제897·899호)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조흡 고신왕지(曺恰 告身王旨)는 1409년(태종 9) 8월 10일 조흡(曺恰)에게 가정대부(嘉靖大夫. 종2품) 중군도총제부총제 겸 판군기감사(中軍都摠制副摠制兼判軍器監事)라는 벼슬을 내린다는 왕지(王旨)이다. 중군은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 및 동북면 지역에 주둔하였는데 이 군대의 책임자가 중군도총제이다. 조흡은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때 방원의 편에 서서 공을 세운 공신으로 1401년(태종 1) 안산군지사(安山郡知事)로 시작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며 1409년(태종 9) 마침내 이 왕지에서 보는 것과 같이 중군도총제에 임명되었다. 양질의 장지 1매에 5줄에 걸쳐 초서로 쓰인 이 왕지의 크기는 세로 40.3㎝ 가로 80cm이다. 말미의 기년(紀年) 부분에 '조선국왕지보(朝鮮國王之寶)'라는 새보(璽寶, 국새(國璽)의 다른 말로 국권을 상징하고 국가적 문서에 사용되던 인장(印章))가 찍혀 있다. 이 문서는 조선 초기 왕지의 성격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서, 1401년(태종 1) 조흡에게 발급된 사패왕지(賜牌王旨, 보물 제899호)와 더불어 조선 전기의 문서양식 연구 및 인사행정제도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현재 동국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역사정보 1986 보물 제898호로 지정
시대분류 조선/1409
주제분류 문화/회화, 서예, 서적(박물관소장품 제외)/교지류(왕이 신하들에게 내린 명령서)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1길 30(필동3가 26) 동국대학교 도서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3가
시작일(발생일) 14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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