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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813 / 칠패로
* 명칭 칠패로 이명칭
개요 칠패로(七牌路)는 숭례문에서 염천교를 지나 서소문근린공원에 이르는 왕복 4차선(일부 7차선) 도로이다. 500m 길이의 짧은 도로이지만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현장들이 보전되어 있는 길이다.
설명 칠패로(七牌路)는 너비 25m, 길이 500m의 왕복 4차선(일부 7차선) 도로로서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40번지 숭례문(崇禮門, 남대문)에서 염천교(鹽川橋)를 건너 서소문(西小門)근린공원에 이르는 길이다. 1984년 11월 처음으로 이 구간의 가로명이 제정되었다. 이름은 숭례문과 염천교 사이에 있었던 칠패시장(七牌市場, 지금의 남대문시장)에서 따왔다. 남대문시장은 18세기 이후 종로시전(鐘路市廛)과 배오개시장(梨峴市場, 지금의 동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주요시장으로 꼽힌다. 칠패시장(남대문시장)의 7패는 원래 지명이 아니었다. 조선 말 정부는 도적·방화·변란 등을 막기 위해 1670년(헌종 11)부터 5군영 중 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훈련도감(訓鍊都監)의 군인들로 하여금 교대로 도성 안팎을 8패로 나누어 해당구역을 순찰하게 하였다. 이곳 봉래동 일대는 어영청의 7패 관할구역으로서 근처에 7패 순청(巡廳)이 있었으므로 칠패라 불리었다. 숭례문은 서울역과 경복궁(景福宮)을 잇는 수도 서울의 남쪽 관문으로서 한양 천도 때부터 도성의 남문(南門)으로 자리를 지켜온 국보(國寶) 제1호 문화유산이다. 조선시대에는 용산강(龍山江)과 마포 서강(西江)을 타고 올라온 재화들이, 철도가 놓인 뒤에는 전국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온 물품들이 서울역과 남대문을 통해 도성 안에 전해졌다. 한양 3대시장의 명성이 태어나게 된 길목이다. 염천교는 옛날 이 자리에 화약을 제조하는 염초청(焰硝廳)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원래는 염청교(焰廳橋) 혹은 염초청교(焰硝廳橋)라 하였는데, 그 소리가 변하여 염천교가 되었다. 염천교는 시냇물[鹽川]과 무관한 고가차도로서 1978년 5월 30일, 너비 30.8m 길이 52.1m의 염천고가차도가 개통하게 되자 칠패길을 운행하는 차량들이 열차 신호대기 없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염천교 서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오른편으로 꽤 넓은 녹지가 나온다. 넓이 1만 7,340㎢의 서소문근린공원이다. 서문 밖 순교지로 불리는 천주교 성지로서 조선 후기 박해가 일어날 때마다 천주교인들을 처형하던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부터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까지 1백여 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되었는데, 이 가운데 44명이 성인으로 추서되어 국내 최대의 천주교 성지가 되었다. 지금은 여러 단체에서 무료로 실직자 급식소와 건강진단, 일자리 안내분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서소문공원에서 칠패로 건너편을 보면 낡은 상자형 4층 건물들이 길쭉하게 늘어서 있다. 2층에서 4층은 간판도 거의 보이지 않고, 1층에만 1970년대식 간판이 줄지어 붙어 있는 염천교 수제화거리가 있다. 광복 후 미군들의 중고 군화를 개조하여 구두를 만들기 시작, 1970년대부터 19880년대까지 수제화의 전국 물량을 이곳에서 거의 다 제공할 정도로 번성하였다. 최근 서울시와 중구가 활성화방침을 밝히면서 다시 활력이 되살아나고 있다.
역사정보 1984 거리명 제정
시대분류 현대/1984(제정)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교통/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1984년(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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