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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803 / 청계천 관수교
* 명칭 청계천 관수교 이명칭
개요 청계천 관수교(觀水橋)는 청계3가교차로에서 북쪽의 돈화문로와 남쪽의 충무로를 연결해주는 폭 25.5m, 길이 22.6m의 도로이다. 옛 관수교는 1918년(순종 12) 일제가 직접 놓은 다리로, 순종 황제를 독촉하러 창덕궁을 찾을 일이 많았던 통감부 요원의 편의를 위해 놓은 것이다.
설명 청계천 관수교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3가교차로에서 북쪽의 돈화문로와 남쪽의 충무로를 연결해주는 폭 25.5m, 길이 22.6m의 도로이다. 중앙은 북쪽으로 일방통행하는 3차선 차도이고, 그 양쪽으로 지붕이 설치된 인도가 있다. 공법은 철재아이빔(I-beam) 상판을 중간 교각 없이 ‘단순형교(單純桁橋)’ 형식으로 얹었고, 인도 가장자리에 다리 양옆으로 살짝 배를 내민 반원형 파이프 장식을 대어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하였다. 원래의 관수교는 1918년(순종 12) 일제가 직접 놓은 다리로, 대한제국 말기 순종 황제의 창덕궁(昌德宮) 집무실과 남산 왜성대(倭城臺)에 있던 조선통감부가 직선으로 이어지는 동선상의 청계천 다리에 해당한다. 바꿔 말하면 순종 황제를 독촉하러 창덕궁을 찾을 일이 많았던 통감부 요원의 편의를 위해 놓은 다리인 것이다. 이름은 인근 관수동의 동명(洞名)을 빌렸는데, 직역하면 ‘청계천 물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청계천 준설사업을 주관하던 ‘준천사’가 이 동네에 있었는데, 준천사에서 늘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했다’는 데서 관수동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일본이 관수교를 놓을 때 미처 예상하지 못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1926년 6월 순종 황제의 인산일(因山日, 출상일)에 일어난 6·10만세운동이다. 주동자들은 많은 백성들이 모이는 황제 국장일을 거사일로 택하였고, 1919년 3·1운동으로 뜨거운 맛을 본 일본은 황제 국장일의 경비를 위해 총독부 산하 모든 경찰과 일본군 5,000여 명을 투입한다. 오전 8시 30분경 황제의 상여가 종로 단성사 앞을 통과할 때였다. 중앙고보생들이 전단지를 뿌리며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자 한 무리의 민중들이 관수교를 넘어 몰려들며 만세를 불렀다. 이어서 북쪽의 동묘와 청량리 방면으로 만세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역사정보 2005 청계천복원사업으로 신축
시대분류 현대/2005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교통/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입정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입정동
시작일(발생일) 2005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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