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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99 / 청계천 장통교
* 명칭 청계천 장통교 이명칭
개요 청계천 장통교(長通橋)는 종로구 관철동과 중구 삼각동·장교동을 연결하는 보행전용 다리이다. 장통교 아래에는 세라믹 자기타일 5,120장으로 만든 192m 길이의 벽화 〈정조반차도(正祖斑次圖)〉가 설치되어 있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화성(華城) 현륭원(顯隆園)에 다녀와서 만든 8일간의 행차보고서로, 1,779명의 인물과 779필의 말이 행진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설명 청계천 장통교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과 중구 삼각동·장교동을 연결하는 보행전용 다리이다. 2줄의 교각을 세우고 철근콘크리트 상판을 얹은 다음 안팎으로 석재를 붙였다. 옛 장통교보다 상류에 복원한 데다가, 복원 형태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논란이 있었다. 조선시대 장통교는 인근에 한성부(漢城府) ‘장통방(長通坊)’이란 행정구역이 있어서 얻은 이름이다. 다리 근처에 긴 창고가 늘어서 있어 ‘장창교(長倉橋)’ 혹은 ‘장찻골다리’로 불리기도 했다. 청계천은 장통교 바로 직전에 남산에서 흘러온 창동천·남산동천 물줄기가 청계천 본류와 합치면서 커다란 삼각지를 만든다. 지금도 그 삼각지 자리의 동명(洞名)이 ‘삼각동’이다. 두 물줄기가 합치니 하천도 급격히 넓어졌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는 “10보(약 12.5m) 하던 다리가 장통교부터 20여 보(약 25m)로 넓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장교(長僑)’다. 장통교를 줄여 부른 이름이기도 하고, ‘넓은 다리 광교(廣橋)’와 맞물려 ‘긴 다리 장교’라 부른 애칭이기도 하다. 장통교 일대는 예로부터 시전상인들이 모여 살던 도성 안 상업의 중심지였다. 중앙과 지방관청의 연락사무를 맡아보던 경주인(京主人)들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인왕산 일대의 ‘북촌’, 남산골 일대의 ‘남촌’에 빗대어 이 일대를 ‘중촌(中村)’이라 불렀다. 유래와 관계는 없지만 새로 복원한 장통교 아래에는 세라믹 자기타일 5,120장으로 만든 192m 길이의 벽화 〈정조반차도〉가 설치되어 있다. 반차도는 궁중의 의식을 그린 그림으로, 반열도(班列圖) 또는 노부도(鹵簿圖)라고도 부른다. 〈정조반차도〉는 〈화성행차도(華城行次圖)〉라고도 하며, 정식 이름은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이다. 내용은 정조가 어머니 경의왕후(敬懿王后,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버지 장현세자(莊獻世子, 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에 다녀와서 만든 8일간의 행차보고서이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책임 아래 만든 목판화로, 1,779명의 인물과 779필의 말이 행진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역사정보 2005 청계천복원사업으로 신축
시대분류 현대/2005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교통/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
시작일(발생일) 2005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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