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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88 / 청계천 영도교
* 명칭 청계천 영도교 이명칭 영미교(永尾橋), 영영다리, 영이별다리
개요 청계천 영도교(永導橋, 永渡橋)는 청계7가교차로와 청계8가교차로 사이에 놓인 다리이다. 중구 황학동과 종로구 숭인동을 이어주는데, 북향으로 일방통행 하는 2차선 도로와, 양옆의 보행로로 구성되어 있다. 옛 영도교는 조선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성종 때 인근에 있는 절의 승려를 동원하여 돌다리로 개축했다.
설명 청계천 영도교(永導橋, 永渡橋)는 청계7가교차로와 청계8가교차로 사이의 청계천에 놓인 폭 26.2m, 길이 30.1m의 다리로 중구 황학동과 종로구 숭인동을 이어주는데, 북향으로 일방통행 하는 2차선 도로와 양옆의 보행로로 구성되어 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는 가로등을 겸한 7개의 장식기둥이 1줄씩 세워져 있다. 영도교는 조선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에는 ‘왕심평대교(旺尋坪大橋)’라 불렀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을 나와서 왕십리·뚝섬·광나루 방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여서 통행량이 많았다. 그런데 잦은 홍수로 다리가 자주 훼손되자 성종 때 영도사(永導寺, 현 안암동 개운사)의 비구(남자 중)들을 동원하여 돌다리를 놓은 뒤 그 노고를 위무(慰撫)하여 ‘영도교(永導橋)’라는 어필(御筆)을 내렸다고 한다. 또 동묘(東廟) 서쪽 창신동의 ‘영미사(永尾寺)’ 승려들을 동원하여 다리를 가설하고 이름을 ‘영미교(永尾橋)’라 지었다는 설도 있다. 이 다리에서 동묘를 지나는 길 이름이 한때 ‘영미교길’, ‘영미다리길’이었고, 일대의 마을 이름이 ‘영미다릿골’, ‘영미동’이었던 걸 상기하면 제법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이름에 얽힌 설이 하나 더 있다. 1458년(세조 4) 단종이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로 귀양을 떠날 때, 단종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가 이 다리까지 나와서 송별했는데, 그것이 ‘영영 이별’이 되어버렸으므로 ‘영이별다리’ ‘영영건넌다리’라 불렀다고 한다. 이를 한자로 ‘영이별교(永離別橋)’, ‘영영교(永永橋)’ 혹은 ‘건널 도(渡)’ 자를 써서 ‘영도교(永渡橋)’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조선 말기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영도교를 해체하고 그 석물을 궁궐 짓는 석재로 징발해 나무다리로 바뀌었다. 그러자 장마 때마다 나무다리가 유실되었고, 하천 바닥에 띄엄띄엄 징검돌을 놓아 건너다녀야 했기에 ‘띄엄다리’라 부르기도 했다. 영도교는 1933년 일제강점기에 나무다리를 헐고 콘크리트 다리로 개축할 때 교각 하부 구석진 곳에서 관음보살목각좌상이 출토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195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로 영원히 사라졌다. 지금은 영도교의 이름과 위치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다리의 구조와 생김새는 알 수 없다.
역사정보 2005 청계천복원사업으로 신축
시대분류 현대/2005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교통/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황학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황학동
시작일(발생일) 2005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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