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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73 / 드라마센터
* 명칭 드라마센터 이명칭 동랑레퍼토리, 남산예술센터
개요 드라마센터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유치진(柳致眞)이 미국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아 준공한 연극전용극장으로, 김중업(金重業, 1922~1988)이 설계를 맡아 1962년 개관하였다.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로 출발한 드라마센터는 우리나라 현대극운동의 진원지이자 중심적 공간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드라마센터는 1980년대부터 서울예술대학교의 주요한 실습무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2001년 서울예술대학이 안산으로 이전하면서 서울시에서 이 공간을 임대해 2009년 6월 남산예술센터로 재개관하였다.
설명 드라마센터는 1960년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유치진(柳致眞)이 미국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준공한 연극전용극장이다. 드라마센터는 건축면적 2,310㎡에 500석 규모의 객석을 갖추고, 1962년에 개관하였다. 김중업(金重業, 1922~1988)이 설계를 맡아 준공된 드라마센터는, 원형의 주무대와 측면무대, 통로무대, 오케스트라 피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객석은 야외극장 형태이고, 관객석 밑으로 연기자가 드나들 수 있는 구조였다. 드라마센터는 1958년에 설립된 한국연극연구소의 부설극장으로 출발하였으며, 1962년 9월 한국연극아카데미를 설립하고 2년 과정의 연기과와 연구과를 설치하였다. 드라마센터는 1962년 4월 12일 연극 ‘햄릿’으로 개관공연을 가졌다. 이후 6편의 공연작품을 올려 총 232회의 공연횟수를 기록하고, 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으나 재정난과 연기진의 대거 이탈로 1963년 1월 막을 내리고 대관극장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1964년 9월 한국연극아카데미에서 양성된 연기자들을 중심으로 전속극단 ‘드라마센터’가 출범하였는데, 1969년경부터 이 극단은 본격적으로 현대극운동의 중심극단으로 발돋움하였다. 이 극단이 중심이 되어 주도한 반사실주의연극은 한국연극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4년 2월 유치진의 사망 후 극단 드라마센터는 이름을 동랑레퍼토리극단으로 바꾸고 현대연극의 실험적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드라마센터는 센터의 부설학교가 발전하면서 1980년대부터는 주로 서울예술대학의 실습장 내지 발표장으로 사용되었다. 2001년 서울예술대학이 안산으로 캠퍼스를 이전하자, 서울특별시가 이 공간을 임대한 후 새롭게 단장하여 2009년 6월 남산예술센터로 재개관하였다. 남산예술센터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공연장과 예술교육관이 갖춰져 있으며,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역사정보 1962 준공 2009 재개관
시대분류 현대/1962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전시, 관람시설/공연장, 소극장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38(예장동 8-19)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시작일(발생일) 1962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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