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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77 / 장충단로
* 명칭 장충단로 이명칭
개요 장충단로(獎忠壇路)는 2.9km 길이의 왕복 4차선 도로로서 청계6가 오간수문지(五間水門址)에서 국립극장·버티고개 교차로에 이르는 길이다. 도로변을 따라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건물과 사적이 즐비한 유서 깊은 길이다.
설명 장충단로는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6가 오간수문지에서부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장충체육관을 지나 버티고개 마루의 교차로에서 한남대로와 이어지는 왕복 4차선 도로이다. 1966년 장충로로 가로명이 제정된 후 장충단길, 장충단로로 바뀌었다. 2015년 현재 도로변을 따라 동대문 패션타운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신라호텔, 반얀트리클럽(Banyantree club), 국립극장 등의 현대적 건물들이 있다. 장충단로는 조선의 역사적 자취와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를 간직하고 있다. 오간수문지(五間水門址)의 지(址)는 터를 뜻하고 오간(五間)은 다섯 칸을 뜻하므로, 오간수문지는 다섯 칸 수문이 있던 터를 가리킨다. 홍예교(虹霓橋, 무지개다리)는 보통 3칸으로 쌓는데, 여기는 5칸이다. 오간수문 다리 위로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에서 광희문(光熙門)으로 이어지는 성벽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길이지만 원래는 성벽이 있던 곳이다. 한양에 새 도성을 지을 때 생겨난 유적인데, 일제 때 멀쩡한 성벽을 강제 철거하고 길로 전용한 역사가 여기 숨어 있다. DDP 자리에는 훈련도감(訓鍊都監, 수도 경비와 훈련을 맡아보던 군영)이 있었다. 1882년(고종 19) 7월 임금체불과 신식군대와의 차별로 군인들이 임오군란(壬午軍亂)을 일으킨 곳이다. 1907년 8월 일본군이 둘러싸고 총을 겨눈 상황에서 군대해산 명령을 받고 군인들 앞에서 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이 자결한 통한의 장소 또한 이곳 훈련원이었다. 그 자리에 이라크계 영국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우주선 형상의 디자인 건물(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이 건축되었다. 도로명의 유래가 되는 장충단(獎忠壇)은 테니스장·놀이터·분수대 등을 갖춘 공원이었으나 본래는 순국 충신·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제단이었다. 1895년(고종 32) 10월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명성황후를 잃은 고종은 와신상담 끝에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였고, 1900년 10월 도성 남쪽 수비를 맡았던 남소영(南小營) 터에 사당과 비각 등을 짓고 장충단이라 명명한다. 을미사변 때 일본인 자객을 막아서다가 참변을 당한 궁내부 대신 이경직(李耕稙)과 시위대장 홍계훈(洪啓薰) 휘하 장병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고종은 매년 봄·가을 군악을 연주하고 조총을 쏘면서 엄숙하게 제사를 지냈고, 차츰 임오군란·갑신정변 때 순국한 충신들을 추가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은 1908년 제사를 금하고 비석을 뽑고, 1910년(순종 3) 조선을 병합한 뒤 사당을 폐사(弊社)하였다. 1919년에는 벚나무를 심고 휴양시설을 설치하여 일본식 공원을 만들었다. 1932년에는 사당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이름을 딴 절 박문사(博文寺)를 세운다. 자재로는 경복궁(景福宮) 부속건물과 광화문(光化門)의 석재, 남별궁(南別宮)의 석고각(石鼓閣) 등을 뜯어다 쓰고, 경희궁(慶熙宮)의 정문인 흥화문(興化門) 등을 옮겨 절의 정문으로 세웠다. 1937년에는 ‘상하이사변[上海事變]’ 때 죽은 ‘육탄 3용사’의 동상을 세웠다. 광복 이후 절과 동상 등 일제의 유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사찰 터에는 현재 신라호텔이 들어서 있다. 이후로도 장충단은 여전히 공원으로 존속하였고, 근대화 과정에서 동국대·국립극장·자유센터·타워호텔 등에 공간을 내주며 녹지의 훼손이 점점 심화되었다. 이를 막고자 1984년 9월 장충단공원을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으로 흡수·합병하였다. 한편 버티고개에는 한양천도(漢陽遷都) 직후부터 도둑떼가 많았는데 1457년(세조 3) 남소문(南小門)을 설치하였다가 풍수에 대한 분쟁이 끊이지 않아 준공 12년 만에 폐문하였다 한다. 오래도록 보행용 고갯길로 이용되어 오다가 1968년 본격 도로확장공사로 지금의 도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역사정보 1966 ‘장충로’로 명명 1988 본격 도로확장공사
시대분류 현대/1966(제정)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교통/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1966년(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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