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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74 / 퇴계로18길
* 명칭 퇴계로18길 이명칭
개요 퇴계로18길은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 4·5번 출구 사이의 지상도로에서 시작하여 남산 케이블카 왼쪽의 소파로로 연결되는 일방통행 단선도로이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공간으로, 당시의 흔적인 통감부 터·조선신궁 터·한양공원 터 등과 인근에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설명 퇴계로18길은 퇴계로 방면에서 남산 정상을 향해 가장 인접하여 접근할 수 있는 단선도로이다.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 4·5번 출구 사이의 지상도로에서 시작해서 남산 방면 진입로로 들어서면 계속 일방통행 표시로 남산 케이블카 왼편 출구까지 길이 안내된다. 길은 소파로(小波路)와 만나면서 끝나고, 소파로를 따라가면 백범광장과 남산도서관에 도착한다.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는 과정은 대략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의 모험적 진출자들이 충무로 일대에 자리를 잡는 시기, 청일전쟁의 승리로 남대문과 명동 일대를 확보하는 시기, 그리고 한일병합 이후 세력확장 시기가 그것이다. 일제는 서울의 중심인 남산 일대부터 접수하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때 왜장 마시타 나가모리[增田長盛]가 남산 중턱에 왜성을 쌓고 1년간 주둔했으나, 당시는 모두 허물어지고 흔적만 남은 자리(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일대)를 ‘왜성대(倭城臺)’라 불렀다 이 왜성대 일대에 일본공사관이 들어서고, 주변 진고개 일대로 일본인들이 몰려들면서 혼마치시대가 열린다.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지금의 한옥마을 자리에 일본병영이 들어서고, 을사늑약으로 1906년 2월 한국통감부가 설치되면서 공사관 옆으로 통감부 청사가 새로 신축됐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통감부는 총독부로 격상되고, 이후 경복궁 신청사로 옮겨가기 전까지 총독부는 이곳에서 16년 동안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을 펼쳤다. 일제가 남산에 펼친 또 하나의 야욕은 조선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1892년 일제는 남산에 천황가의 시조인 아마데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신궁(神宮)을 세우기로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1897년 일본공사는 예장동 일대 1만㎡를 영구임대하여 벚나무로 도배를 한 뒤 ‘왜성대공원’이라 명명하고 1898년 마침내 남산대신궁(南山大神宮)을 세운다. 뿐만 아니라 1906년에는 회현동 일대 10만㎡를 또다시 무상으로 영구임대하여 1910년에 ‘한양공원(漢陽公園)’을 개원한다. 1918년 일제의 원대한 청사진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장충단공원·왜성대공원·한양공원으로 둘러싸인 ‘사쿠라벨트’의 중심에 일본정신의 정수로서 조선신궁을 건립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1925년, 상중하 3단의 15채 건물과 상중하 3개의 광장을 거느린 조선신궁이 완공되었다(지금의 백범광장·남산도서관 자리). 이 조선신궁이 완공된 이듬해 조선총독부는 경복궁 신청사로 이전하고, 이후 일본인들은 동쪽 장충단부터 퇴계로·명동·을지로·회현동 일대, 남대문 일대와 서쪽 후암동·용산 일대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 이렇듯 남산을 중심으로 한 퇴계로18길 일대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온 대한민국 역사의 슬픈 단명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현대/미상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교통/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18길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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