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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58 / 학생반공의 탑
* 명칭 학생반공의 탑 이명칭
개요 학생반공의 탑(學生反共의 塔)은 1968년 11월 제12회 반공학생의 날을 기념하여, 1945년에 일어난 신의주학생의거(新義州學生義擧)를 기리고 반공의 뜻을 되새기고자 ‘신의주학생의거기념사업회’에 의해 한국자유총연맹 안에 세워졌다. 이 탑의 지하에는 신의주학생의거에서 희생된 박태근의 유골이 봉안되었다. 비석의 휘호(揮毫)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었다.
설명 학생반공의 탑(學生反共의 塔)은 1968년 11월 제12회 반공학생의 날을 기념하여, 1945년에 일어난 신의주학생의거(新義州學生義擧)를 기리기 위해 한국자유총연맹 안에 세워진 기념탑이다. ‘신의주학생의거기념사업회’는 신의주학생의거에서 희생된 수많은 학생들의 민족적 의기와 애국심을 상징하는 높이 12.5m, 폭 1.2m의 탑을, 1967년 6월 기공하고 1968년 11월 준공했다. ‘학생반공의 탑’이란 비석의 휘호(揮毫)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었다. 이 탑의 지하에는 신의주학생의거 당시 순국한 신의주 제1공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박태근(朴泰根)의 유골이 안장되어있다. 전라북도 남원에 안장했던 유골을 고인의 어머니인 김영숙(金英淑)이 가지고 와서 기념탑 건립과 더불어 이장한 것이다. 신의주학생의거는 1945년 11월 23일 평안북도 신의주(新義州)에서 중학교 학생들이‘공산당 타도’를 외치며 벌인 반소(反蘇)·반공(反共) 시위로 23명이 사살되고 700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80여 명이 검거됐다. 이는 북한주민의 반공의식(反共意識)을 대변한 것이며, 1919년의 3·1운동, 1926년의 6·10만세사건,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 등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한국 학생들의 민족적 의기(義氣)와 애국심의 발로였다. 이 의거는 신의주반공학생사건(新義州反共學生事件), 신의주학생반공의거(新義州學生反共義擧)라고도 부른다. 1956년 동대문운동장에서 신의주학생의거 11주년 기념식이 거행됐으며 행사에서 이날을 반공학생의 날로 제정할 것을 결의해, 1957년부터 11월 23일을 반공학생의 날로 지정·기념하게 됐다.
역사정보 1945 신의주학생의거 발발 1957 반공학생의 날 지정 1967 학생 반공의 탑 기공 1968 학생 반공의 탑 준공
시대분류 현대/1968
주제분류 문화/축조물/탑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72(장충동2가 201-6)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시작일(발생일) 1968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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