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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56 / 외솔최현배선생기념비
* 명칭 외솔최현배선생기념비 이명칭
개요 외솔최현배선생기념비(외솔崔鉉培先生記念碑)는 한글학자이자 교육자이며 독립운동가로 한글의 발전과 애국을 위해 힘쓴 외솔 최현배(崔鉉培, 1894~1970)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71년 ‘최현배선생기념비건립위원회’에 의해 남산공원 장충자락에 세워진 기념비이다.
설명 외솔최현배선생기념비(외솔崔鉉培先生記念碑)는 한글학자이자 교육자이며 독립운동가로서 한글의 과학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외솔 최현배(崔鉉培, 1894~1970)를 기리기 위해 1971년 ‘최현배선생기념비건립위원회’가 남산공원 장충자락에 건립했다. 부지면적 40.32㎡에 높이 9.75m의 화강석으로 만든 기념비 가운데에는 동(銅)으로 부조(斧藻)한 최현배선생의 흉상(胸像)이 붙어있다. 기념비 뒷면에는 그가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던 중에 쓴 〈임〉이라는 시와 모기윤이 짓고 고동주가 글씨를 쓴‘외솔찬가’가 새겨져있다. 1894년(고종 31)에 경남 울산에서 출생한 최현배는 한글학자이자 교육자이며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최현배는 1915년 경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周時經, 1876~1914)에게 한글을 배운 뒤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창립된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서 한글연구와 한글사랑운동을 했다. 1919년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이어 1925년 일본 교토제국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교육학과 국어운동에 관련된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한글학회의 이사장직을 맡는 등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힘썼다. 1926년에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1938년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사건으로 파면당할 때까지 재직했다. 1941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에 휘말려 1945년 해방까지 4년간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출옥하여 문교부(文敎部)에서 1945년, 1951년 각각 3년간 두 차례 편수국장을 지내면서 교과서편찬을 지도했다. 이후 1954년 연희대학교 교수로 돌아와 문과대학 학장과 부총장을 역임하고 1961년에 퇴임했다. 최현배는 학술원 부회장, 한글학회 이사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국어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글연구에 일생을 바쳐 말본의 체계를 확립했고 한글전용운동에 힘썼다.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단장(單章)을 수여받고 1970년 사후에 국민훈장(國民勳章) 무궁화장(無窮花章)을 추서 받았다. 대표저서로는 《우리말본》《한글갈》《글자의 혁명》《나라 사랑의 길》등이 있다. 특히, 주시경 이래 한글문법연구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20세기 전반기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 《우리말본》과 한글연구의 체계화를 추구한 《한글갈》은 그의 주요 업적으로 평가된다.
역사정보 1894 최현배 출생 1919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졸업 1925 일본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졸업 1926 연희전문학교 교수 재직 1938 연희전문학교 교수 파면 1941 조선어학회사건 연루되어 4년간 투옥 1945 문교부 편수국장 취임 1951 문교부 편수국장 재취임 1954 연희대학교 교수 재직 1962 대한민국 건국훈장 단장 수여 1970 최현배 사망, 국민훈장 무궁화장에 추서됨 1971 외솔최현배선생기념비 준공
시대분류 현대/1971
주제분류 문화/인물/기념비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산7-24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시작일(발생일) 1971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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