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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43 / 백범광장 백범김구상
* 명칭 백범광장 백범김구상 이명칭
개요 백범광장(白凡廣場) 백범김구상(白凡金九像)은 1969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자 정치가인 김구(金九, 1876~1949)의 항일구국운동과 통일국가수립을 위해 노력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남산공원 백범광장 안에 설립한 동상이다.
설명 백범광장(白凡廣場) 백범김구상(白凡金九像)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자 정치가인 김구(金九, 1876~1949)의 항일구국운동과 통일국가수립을 위해 노력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9년 8월 남산공원 백범광장 안에 설립한 동상이다. 1949년 그가 암살당한 뒤 2달 만에 김구선생동상건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되면서 동상 건립논의가 시작됐다. 장소는 일제강점기 조선신궁(朝鮮神宮) 터였던 남산공원으로 정했다. 동상은 국내외 각계에서 보내온 찬조금으로 1969년 생존 시 만들어진 석고흉상을 바탕으로 조각가 김경승(金景承)과 민복진(閔福鎭)이 조각하여 높이 10m로 만들었다. 1960년에 결성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의 주도 하에 1969년 4월 8일 동상건립기공식을 열고, 그가 태어난 날인 8월 23일 동상제막식을 가졌다. 김구는 1876년(고종 13)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출생했으며, 호는 백범(白凡), 연하(蓮下)이다. 어려서 한문을 배웠고, 1893년(고종 30) 동학(東學)에 들어가 1894년(고종 31) 접주(接主)이자 동학군 선봉장으로 해주성(海州城)을 공략했다. 이 일로 인해 1895년 안태훈(安泰勳)의 집에 몸을 숨겼는데, 그의 아들인 의사(義士) 안중근(安重根)과도 교분을 나눴다. 1896년(건양 원년) 치하포(鴟河浦)에서 왜병 중위 쓰치다 조스케[土田壤亮]를 처단해 명성황후시해의 원한을 푸는 첫 거사를 단행했다. 이 일로 해주감옥에 수감되어 1897년(광무 1)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종황제의 특사로 집행이 중지되었다. 그러나 석방되지 않자 1898년(광무 2) 탈옥했다. 1906년(광무 10) 해서교육회(海西敎育會)의 총감으로 학교설립을 추진하여 1907년(광무 11) 안악(安岳)에 양산학교(楊山學校)를 세웠다. 1909년 비밀단체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해 구국운동에 가담했고,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거사에 연좌되어 해주감옥에 투옥됐다가 석방됐다. 1919년에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고, 1928년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했다. 이어 1931년에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을 조직해 의혈청년들의 구국운동을 지도했다. 1934년 임시정부 국무령에 재임됐고, 1939년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했으며, 1940년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했다. 중국 본토와 한반도 수복의 군사훈련을 적극 추진하고 지휘하던 중 8·15광복을 맞이한 그는 1945년 11월 환국하고, 신탁통치결의에 대한 반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48년 단독정부수립방침에 반대하고 통일정부수립을 주장했다. 김구는 이후 남북한의 단독정부가 1948년에 서울과 평양에 각각 세워진 뒤에도 민족통일운동을 계속하다가, 1949년 6월 서울 자택에서 육군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에 추서되었다.
역사정보 1876 김구 출생 1896 명성황후시해의 원한을 풀고자 왜병 중위 처단 1907 양산학교 설립 1909 신민회 조직 1919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 역임 1928 한국독립당 창당 1931 한인애국단 조직 1939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취임 1940 한국광복군 조직 1948 신탁통치에 대한 반탁운동 전개, 자주독립의 남북한통일정부수립 주장 1949 김구 사망 1962 건국공로훈장에 추서 1969 백범광장 백범김구상 건립
시대분류 현대/1969
주제분류 문화/축조물/동상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100-115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시작일(발생일) 1969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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