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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40 / 조지훈시비
* 명칭 조지훈시비 이명칭
개요 조지훈시비(趙芝薰詩碑)는 1971년 조지훈시비건립위원회가 시인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을 추모하기 위해 남산공원 케이블카 부근에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는 자연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노래한〈파초우(芭蕉雨)〉가 새겨져있다.
설명 조지훈시비(趙芝薰詩碑)는 1968년 5월에 사망한 국문학자이자 시인인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을 추모하기 위해 1968년 8월에 발족한 조지훈시비건립위원회가 1971년 7월 10일 남산공원 케이블카 부근에 세운 비석이다. 조지훈시비건립위원회는 1968년 8월에 발족한 단체로 조지훈의 문단 선후배와 그의 제자들로 구성되었다. 이 비석은 작고한 시인을 추모하기 위한 문인비(文人碑)건립이 활발해진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당시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 높이 2.5m의 시비에는 〈파초우(芭蕉雨)〉가 새겨져있다. 7.5조인 민요조가락을 사용하며 고풍스러운 언어로 쓰인 이 시는 화자(話者)가 구름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을 노래했다. 조지훈은 1920년 경상북도 영양(英陽)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동탁(東卓)이며, 가풍이 엄격한 집안에서 할아버지로부터 한학(漢學)을 배우고, 독학으로 중학교과정을 마친 후 1941년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 현 동국대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문장(文章)》에 〈고풍의상(古風衣裳)〉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이후〈승무(僧舞, 1939)〉,〈봉황수(鳳凰愁, 1940)〉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시는 고전적인 풍물을 소재로 삼아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담고 있다. 1946년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이들 세 사람을‘청록파’라고 불렀다. 이후 경기여고 교사를 지내다가 1947년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조교수로 취임해 후학양성에 힘썼다. 1952년에 단독으로 첫 시집 《풀잎 단장(斷章)》을 간행했고, 1956년에는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을 간행했다. 한편, 그는 자유당 정권말기 혼란한 사회를 보며 현실문제에 관심을 가져 민권수호국민총연맹(民權守護總聯盟), 공명선거추진위원회(公明選擧推進委員會)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조지훈의 시풍은 전환기를 맞았다. 그 이전의 시가 자연과 무속 등을 주제로 한 서정적이고 동양적인 미를 추구했다면, 1959년에 발표한 시집 《역사 앞에서》 이후에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표출됐다. 《지조론(志操論)》은 이 무렵에 쓰인 것으로 민족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1962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해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했으며,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의 논저(論著)를 남겼지만 방대한 기획을 다 완성하지 못한 채 1968년에 사망했다.
역사정보 1920 조지훈 출생 1939 《문장》에 〈고풍의상〉이 추천되어 등단 1941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졸업 1946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 간행 1947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 취임 1952 첫 단독시집 《풀잎단장》 간행 1959 《역사 앞에서》 간행 1962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 취임 1968 조지훈 사망 1971 조지훈시비 건립
시대분류 현대/1971
주제분류 문화/인물/문학비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공원길 507(예장동 산5-6) 남산공원 케이블카 부근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시작일(발생일) 1971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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