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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38 / 제일강산태평세계비
* 명칭 제일강산태평세계비 이명칭
개요 제일강산태평세계비(第一江山太平世界碑)는 1963년 골동상 배성관(裵聖寬, ?~1968)에 의해 장충단공원 내 장충단비 뒤편에 세워진 비석이다. 배성관은 일제강점기 문화재밀반출업자이자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던 골동상이였으나, 6·25전쟁 때 자식을 잃고 사찰·박물관 등지에 재산을 희사(喜捨)하고 그간 수집한 유물들을 기증했다. 장충단공원에 비석이 건립된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설명 제일강산태평세계비(第一江山太平世界碑)는 1963년 골동상 배성관(裵聖寬, ?~1968)에 의해 장충단공원 내 장충단비 뒤편에 세워진 비석이다. 이 비석에는 1963년 5월 15일 배성관(裵聖寬)이 근립(謹立)했다고 새겨져있고 근처에 2점의 장명등(長明燈)이 놓여있다. 서울 남대문에서 배성관형제상점을 운영하던 배성관은 일제강점기에도 서울에서 몇 안 되는 한국인 골동상인이자, 일본인이 경영하던 주식회사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의 주주였다. 일본인 상인들 사이에서‘하이세이칸’, ‘쵸무마게상(상투쟁이)’으로 통하였으며 문화재를 밀반출한 이력이 있다. 세속적이고 이익만을 추구하던 그가 이 비석을 세운 배경은 1973년 《월간 문화재》 7·8·9월호에 수록된 연재물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에 살던 배성관은 6·25전쟁 때 피신시켰던 자식 6남매 모두를 포격으로 잃었다. 이후 그는 죽은 자식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원사(奉元寺)에 불당과 석불을 세우고 거액을 기증하며 불도(佛道)에 귀의했다. 또 육군사관학교박물관에도 상당수의 군사관련유물을 기증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여러 곳에 1959년 7월부터 1968년 4월까지 모두 92점의 유물을 기증했다. 배성관은 유물을 기증하던 마지막 해인 1968년 사망하였다. 제일강산태평세계비가 무슨 이유로 을미사변(乙未事變)과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희생된 영령(英靈)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장충단이 있는 장충단공원 안에 건립되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은 뒤 독지가(篤志家) 혹은 유물기증자로 변모한 그가 이전의 잘못을 속죄하고자 세운 것이 아닐까 추정할 따름이다.
역사정보 1959~1968 배성관 유물 92점 기증 1963 제일강산태평세계비 건립 1968 배성관 사망
시대분류 현대/1963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10(장충동2가 197)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시작일(발생일) 1963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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