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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35 / 퇴계이황선생상
* 명칭 퇴계이황선생상 이명칭
개요 퇴계이황선생상(退溪李滉先生像)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愛國先烈彫像建立委員會)가 1970년 남산도서관 앞에 건립한 동상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조선의 성리학 발전에 큰 공로가 있는 이황(李滉, 1501~1570)의 교육철학과 학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본받기 위해 세워졌다.
설명 퇴계이황선생상(退溪李滉先生像)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愛國先烈彫像建立委員會)가 1970년 남산도서관 앞에 건립한 동상이다. 동상의 규모는 대석 높이 4m, 동상 높이 4.5m로 총 8.5m의 높이이고 부지면적은 150㎡이다. 서라벌예술대학의 문정화(文貞化)가 조각했고, 동상의 글과 글씨는 각각 철학자 박종홍(朴鍾鴻)과 김기승(金基昇)이 담당했으며, 동상 전면의 글씨는 동상제작비용을 헌납한 럭키화학공업회장 구자경(具滋暻)이 썼다.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다. 그는 중국 남송(南宋)의 유학자인 주희(朱熹)의 사상을 연구해 조선 성리학 발달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주리론(主理論) 전통의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조(宗祖)로 숭앙(崇仰)된다. 호는 퇴계(退溪)이고, 1528년에 소과(小科)에 합격했으며, 1534년 식년시(式年試)에서 문과(文科)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승문원(承文院)과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시강원(侍講院) 등에서 관직을 역임했다. 1551년에는 계상서당(溪上書堂)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다 조정의 명으로 마지못해 관직에 올랐다가 사직하여 물러나기를 되풀이했다. 1561년에는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다. 퇴계이황선생상의 뒷면에는 이황의 교육철학이 잘 나타나있다. 그는 공경의 자세로 지식을 탐구하고 실천했으며 순수하고 진실 된 성품으로 제자들을 정성껏 이끌어 문하(門下)에 어질고 이름난 이들이 뒤이어 나왔다. 70평생 마지막까지 자기의 학설 속의 잘못된 부분을 고백하고 고치기에 용감하여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남겨주었다. 퇴계이황선생상은 국가단위 공공예술프로젝트인 애국선열들의 조상(彫像) 건립 운동의 일환으로 건립됐다. 애국선열조상건립운동은 1964년 서울시내 미대생연합이 제작한 석고로 만든 37인의 역사인물 조상의 수리문제가 문화재위원회의 안건으로 올라가면서 시작된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는 새로 위인동상건립위원회를 만들자는 결론을 냈다. 이어 1966년 제1회 5·16민족상 산업부문 장려상 수상자인 이한상(李漢相, 1917~1984)이 영구성 있는 동(銅) 또는 대리석으로 선열(先烈)들의 조상(彫像)을 건립하도록 의뢰하면서 상금 50만원을 서울신문사에 기탁했다. 당시 김종필(金宗泌) 공화당 의장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의 총재를 맡았고, 서울신문사가 주관사가 되어 1968년부터 1972년까지 5년간, 15기의 동상건립프로젝트가 실행되었다. 퇴계이황 선생상은 그 중 12번째로 세워졌다.
역사정보 1501 이황 출생 1528 소과 합격 1534 식년시 문과 을과로 급제 1551 계상서원 건립 1561 도산서당 건립 1570 이황 사망 1970 퇴계이황선생상 건립
시대분류 현대/1970
주제분류 문화/축조물/동상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소월로 109(후암동 30-84)
지역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시작일(발생일)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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