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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732 / 이희승학덕추모비
* 명칭 이희승학덕추모비 이명칭
개요 이희승학덕추모비(李熙昇學德追慕碑)는 1994년 국어학자이자 문인인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1896~1989)의 학술적 업적과 행적을 기리기 위해 남산골공원 안에 세운 기념비이다. 이희승은 수필 〈딸깍발이〉를 통해 가난하지만 청렴결백하고 지조를 간직했던 남산골의 선비상을 강조했다. 이에 후학들은 그가 남긴‘딸깍발이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추모비를 건립했다.
설명 이희승학덕추모비(李熙昇學德追慕碑)는 국어학자이자 문인인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1896~1989)의 학술적 업적과 청렴결백하며 지조 있는 삶을 살았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94년에 후학(後學)들이 남산골공원 안에 조성한 비석이다. 이희승은 1896년(고종 33)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일석(一石)이다. 그는 1925년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수물과(數物科)를 졸업하고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어학 및 문학과를 졸업한 이후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대학원 1년을 수료했다. 1930년 조선어학회에서 간사와 간사장을 역임하면서 ‘한글맞춤법통일안’과 ‘표준어사정(標準語査定)’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梨花女子專門學校)에서 국어학 및 국문학을 가르치다가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朝鮮語學會事件)으로 검거되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형무소에서 3년간 투옥되었다. 광복 후 1945년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로 취임했고, 1946년 학제개편이 되면서 국어국문학과 소속 교수로 바뀌었다. 그는 국어학연구의 선구자로서 《국어대사전(1961)》 등의 저서를 남기며 국어학 발전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이희승은 또 1960년 4월 25일 3·15부정선거규탄 대학교수단 데모에서 앞장섰으며, 1963년 8월 동아일보사 사장에 취임해 1965년까지 군사정권 아래에서 언론의 발전을 위해 진력했다. 추모비가 남산골공원에 건립된 배경은 수필〈딸깍발이〉에서 찾을 수 있다. 〈딸깍발이〉는 1952년 잡지 《협동》 제37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이희승의 첫 수필집 《벙어리 냉가슴(1956)》에 실려 있다. ‘딸깍발이’라는 말은 남산에 살던 가난한 선비들을 비하해서 부르던 남산골샌님의 별명이다. 이러한 기존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 이희승은 수필〈딸깍발이〉를 통해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청렴결백하고 지조를 지키며 살던 '딸깍발이'를 전통적인 선비상으로 제시하고, 이기적이며 이해타산적인 현대인의 삶을 넌지시 비판했다. 이에 후학들은 평생을 국어학발전과 시대의 고민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살아온 이희승이 남긴 ‘딸깍발이정신’을 기리기 위해 남산골 정원에 추모비를 세웠다. 이희승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역사정보 1896 이희승 출생 1930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어학 및 문학과 졸업 1942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투옥 1945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 취임 1960 3·15부정선거규탄 대학교수단 데모 참가 1961 《국어대사전》 저술 1962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됨 1963 동아일보사 사장 취임 1989 이희승 사망 1994 이희승 학덕추모비 건립
시대분류 현대/1994
주제분류 문화/인물/기념비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필동2가 84-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시작일(발생일) 1994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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