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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66 / 남산사 터
* 명칭 남산사 터 이명칭
개요 남산사(南山寺) 터는 조선시대에 창건된 남산사가 입지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6길 17에 해당한다. 남산사는 조선시대에 창건되어 일제강점기에 중건되었으나 지금은 석조계단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남산사 터에는 금당(金堂)과 법당(法堂)이 있던 자리, 석조기단을 포함한 계단 일부, 지대석(地臺石) 등이 남아 있다.
설명 남산사(南山寺)는 조선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6길 17의 남산 기슭에 소재하고 있었다. 남산사 터는 남산사가 있었던 자리로, 서울 시내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절터 가운데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각념선사(覺念禪師)가 남산사 터 위에 각심사(覺心寺)를 지었으나, 이마저도 훼손되어 현재에는 일부 흔적만이 남아 있다. 조선의 건국세력은 고려의 국가적 종교였던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새 국가의 운영원리로 내세웠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은 《불씨잡변(佛氏雜辨)》을 저술하여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제시하고 억불론을 구체적으로 논증하였다. 1401년(태종 1) 태종이 즉위하자 억불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불교 종단을 정리하고, 70개 사찰을 제외한 전국 모든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였다.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였으며, 승려에게 환속이 강요되었다. 아울러 불교가 담당하던 상제례(喪祭禮)를 유교식으로 바꾸어나가면서 불교의 사회적 권위는 약화되었다. 그 결과 조선시대의 불교는 은둔의 종교로 전락해 도성의 절은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남산사 터에는 입구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우측 축대 사이로 난 계단길로 오르면 바로 위쪽에 일제강점기에 대리석으로 만든 육각주석(六角柱石)이 보인다. 이 주석의 전면에는 ‘대일여래존(大日如來尊)’이란 글씨가 음각(陰刻)되어 있는데, 주석(柱石)의 크기는 67×20×30cm 내외이다. 입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우측에 돌계단이 놓여 있는데, 계단의 넓이는 625cm 내외이며 총 12단이다. 계단 맨 위부터는 다소 평탄한 대지가 나타나며, 현재는 ㄱ자형의 남루한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곳에 남산사가 세워져 있었으며, 그 주변 7,590㎡ 정도가 사찰의 부지였다고 한다. 대지 위에는 건물 부재들이 놓여 있다. 바로 눈에 띄는 초석 1기는 정연하게 치석되어 있으며 63×75×54cm 크기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주변에 원반형 석재도 보이는데, 지름은 46cm, 높이 30cm이다. 가옥 대문 앞에도 화강암으로 만든 3단짜리 계단이 남아 있다. 남산사 터는 현재 서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조선시대의 절터이다. 창건 후 흔적조차 찾기 힘들게 된 남산사와, 각념선사가 중건한 각심사조차도 훼손이 심각하게 진행되어 그 흔적만 겨우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역사정보 미상 남산사 창건(조선) 1936 각심사 중창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종교유적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6길 17(필동3가 79)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3가
시작일(발생일)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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