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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686 / 영락교회
* 명칭 영락교회 이명칭
개요 영락교회(永樂敎會)는 1945년 12월에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27명의 성도들이 한경직(韓景職, 1902~2000) 목사를 중심으로 모여 창립예배를 드리며 만들어진 교회이다. 1977년 십자형으로 증축되었고, 2000년 고딕건축양식으로 보수하면서 창립 당시 모습을 따랐다.
설명 영락교회(永樂敎會)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에 속한 교회로 칼빈주의(Calvinism)에 입각한 개혁주의 신앙을 선포하는 신앙공동체이다. 이 교회는 1945년 12월 공산정권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27명의 북한 피난민들과 한경직(韓景職, 1902~2000) 목사를 주축으로 하여 시작되었는데, 당시의 이름은 ‘베다니 전도교회’였다. 이는 처음 교회를 세울 때 한경직 목사가 내세운 교회의 3대 목표인 ‘선교·교육·봉사적 사명’에 따른 것으로, 예배하는 공동체,교육하는 공동체,선교하는 공동체,친교하는 공동체,봉사하는 공동체로서의 전통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한경직 목사는 1992년 4월 세계적으로 종교부문에서 공헌한 사람들, 특히 인류를 위해 ‘영성(spirituality)’에 공헌하거나 개척자적인 일을 한 사람들을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 그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템플턴상’을 수상한 바 있다. ‘템플턴상’은 흔히 종교부문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교회 이름은 1946년 11월 당시의 지명에 따라 영락교회로 개칭되었다. 1947년 영락보린원을 창설하고, 피난교우를 위하여 천막수용소(574명 수용)와 천막예배당을 설치했다. 1947년 9월에는 예배당 건축위원회를 결성해 1949년 3월 24일 석조전 건축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8월 15일 신축교회의 머릿돌을 가지게 되었다. 1950년 6월 4일 미완성된 예배당에서 첫 예배를 드렸고, 그 해 7월 9일에는 공산군에 예배당을 징발당하여 승동교회 예배당을 빌려 예배드렸으며, 1954년에 지금의 본당에서 헌당예배를 드리게 된다. 지금의 본당은 1977년 6월 21일 십자형으로 증축 변형되었다. 2000년 11월부터 1년간 지붕과 종탑, 내부인테리어를 보수했다. 고딕건축양식으로 창립당시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후 계속되는 교회의 성장으로 영락교회는 18교구, 1290구역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교인 수는 약 5만 명에 이른다. 현재 영락교회가 내세우고 있는 교회의 목표는 한경직 목사가 내세운 3대 목표에 하나를 더한 ‘교육·성도의 교제·선교·봉사’이다. 또한 4대 신앙지도원칙으로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의 육성’, ‘성서적 생활 윤리의 훈련’, ‘교회 연합정신의 구현’,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 실현’을 내세우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선교에도 힘쓰고 있으며, 여러 개의 학원과 사회복지재단 등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역사정보 1945 베다니전도교회로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27명이 모여 예배를 드림 1957 교회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교육관 봉헌 1966 영락유치원 개원 1973 한경직 목사 원로목사 추대 1980 주일예배 성도 2만 명 돌파 1997 50주년 기념관 준공 2000 한경직 목사 사망 2002 한경직 목사 탄신 100주기 2015 영락교회 창립 70주년
시대분류 현대/1945
주제분류 문화/축조물/대형교회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로 33(저동2가 69)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2가
시작일(발생일) 1945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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