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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63 / 금영창 터
* 명칭 금영창 터 이명칭 금위영 창고 터
개요 금위영(禁衛營)이라고도 불리던 금영(禁營)은 조선 후기 5군영(五軍營) 가운데 하나로, 훈련도감(訓練都監)·어영청(御營廳)과 함께 국왕의 호위와 수도의 방어를 담당하던 군영이었다. 금영창(禁營倉) 터는 금영의 창고가 있었던 곳이며,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7길 35 일대에 해당한다.
설명 금영창(禁營倉) 터는 조선 후기 금영의 창고가 있던 곳이다. 금영은 금위영(禁衛營)이라고도 불리었는데, 조선 후기 5군영(五軍營) 가운데 하나로 훈련도감(訓練都監)·어영청(御營廳)과 함께 국왕의 호위와 수도의 방어를 담당하던 핵심 군영이었다. 금위영은 1682년(숙종 8) 병조판서 김석주(金錫冑)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다. 종전에 병조(兵曹) 소속의 갱번군(更番軍, 교대로 근무하던 군대)이었던 정초군(精抄軍)과 훈련도감 소속의 갱번군이었던 훈련별대(訓鍊別隊) 등을 합쳐 하나의 군영으로 편제한 것이다. 1704년(숙종 30) 군제변통(軍制變通) 때 어영청과 규모를 같이하기 위해 1영, 5부, 25사, 125초의 향군 번상 숙위(番上宿衛, 지방의 군졸을 중앙의 군영으로 보내 근무하게 하는 일)체제로 정비되었다. 설치 초기에는 임무의 중요성과 병조 소속의 정초군 등이 주류를 이루어 병조판서가 대장을 겸직하였으나 1754년(영조 30)에 처음으로 병조판서가 아닌 단독 대장이 임명되어 독립된 군영이 되었다. 금위영의 운영은 보(保)에 의해 이루어져 많을 때는 9만 명에 달하였다. 금위영은 1881년(고종 18) 장어영(將禦營)으로 통합되었다가 1895년(고종 32)에 갑오개혁과 함께 혁파(革罷)되었다. 금영창 터는 금위영의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의 장충동2가 일대에 해당한다. 금영창 터 주변에는 금위화약고(禁衛火藥庫) 터·어영창(御營倉) 터 등이 있다.
역사정보 1682 금위영 설치 1895 금위영 폐지
시대분류 조선/1682년 이후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7길 35(장충동2가 128)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시작일(발생일) 1682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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