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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55 / 신라호텔 영빈관
* 명칭 신라호텔 영빈관 이명칭
개요 신라호텔 내에 소재한 영빈관은 1967년 2월 국빈전용의 숙소로 준공된 한옥건물이다. 1973년 7월 삼성그룹이 영빈관을 인수한 후 지금은 호텔의 일부로서 주로 회의장과 연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빈관 자리는 일제강점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는 박문사(博文寺)가 있었던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설명 영빈관은 1967년 2월 국빈 전용 숙소로 쓰기 위해 9만 2,400㎡의 대지 위에 준공된 한옥 건물로 연건평은 3,300㎡이었다. 건물의 조경을 위해 주변에 여러 그루의 관상수를 심어 경관을 조성하였다. 준공 직후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이 첫 손님으로 다녀갔고, 그 뒤 한국을 방문하는 국빈급 인사들이 주로 이곳에 머물렀다. 그중에는 1972년 남북회담 당시 서울을 방문한 북한 측 대표들도 있었다. 원래 영빈관은 1959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의 발의로 이곳에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65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다시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영빈관은 1972년까지 국빈전용 숙소로 이용되었고, 1973년 7월 삼성그룹에 인수되었다. 삼성그룹은 1973년 2월 14일 그룹 내에 호텔사업부를 만들고, 1973년 5월 9일 주식회사 임페리얼을 설립하였다. 1973년 7월 영빈관을 인수한 후 삼성그룹은 그해 11월 호텔 기공식을 갖고, 1979년 신라호텔을 개관하였다. 신라호텔은 우리나라의 호텔 가운데 전통문화를 반영하고 로비공간을 한국화한 건물로 특징적인데, 신라호텔이 이처럼 우리 전통의 표현에 역점을 둔 것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영빈관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신라호텔이 현관을 창호문살로 장식하고 로비 지붕에 청기와를 올린 것도 모두 영빈관의 정취를 해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다고 알려진다. 현재 호텔의 일부가 된 이 건물은 영빈관으로서의 기능이 없어지고 회의장과 연회장 등으로 사용된다. 신라호텔 영빈관이 있던 장소는 일제강점기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는 일본 사찰인 박문사(博文寺)가 있었던 자리이다. 박문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23회 기일인 1932년 10월 26일 완공된 후 일제에 의해 성역화되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군수물자 저장소로 지하창고가 이용되었고, 광복 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위패가 대신 봉안되기도 하였다. 6·25전쟁 이후 국군 전몰장병 합동위령소로도 이용되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역사정보 1967 영빈관 준공 1973 삼성그룹이 인수 1979 신라호텔 개관
시대분류 현대/1967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숙박, 식사/호텔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49(장충동2가 202)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시작일(발생일) 1967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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