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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47 / 장충동2가 189-13주택
* 명칭 장충동2가 189-13주택 이명칭 장충동2가 문화주택
개요 장충동2가 189-13주택은 1960년대에 지어진 중상류층 주택이다. 화강석으로 마감된 슬라브주택이다. 일제강점기에 유행하여 광복 이후에도 인기를 끌었던 문화주택 양식으로 지어졌다. 장충파출소 맞은편의 우리은행과 하늘정원 사이 골목에 위치한다.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 서울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건설된 문화주택단지 자리로 인근에는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 건축된 문화주택들이 여럿 남아있다. 장충동2가 189-13주택은 일제강점기 건설된 문화주택을 허물고 새로 건축한 것으로, 광복 이후 건설된 문화주택의 일반적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설명 장충동2가 189-13주택은 1960년대 건축된 중상류층 주택으로 문화주택 양식을 지닌다. 화강석으로 마감된 슬라브주택으로, 장충파출소 맞은편의 우리은행과 하늘정원 사이 골목에 위치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였으나 도시구획 정리 과정에서 공동묘지를 이전하고 문화주택단지를 건설하였다. 장충동2가 189-13주택의 인근에는 현재까지도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건축된 문화주택들이 남아 있는데, 1930년대 건축물 4동, 1960년대 건축물 2동이다. 일제강점기의 서울 역시 인구과밀화 문제와 함께 주택문제가 대두되었다. 특히 서울에 근대적 기관들이 들어서면서 새롭게 성장한 중상류층에 대한 주택 공급이 필요해졌다. 주로 일본인들이었던 이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제는 1921년, 1934년, 1938년 3차례에 걸쳐 문화주택 단지를 건설하고 분양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1936년 서울의 시역을 확장하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진행하여 대규모 주거지를 개발하였다. 상업화된 문화주택이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서울에 일본인 인구의 유입과 도시과밀화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장충동의 일본인 공동묘지가 서울 외곽으로 이전되고, 그 자리에 대규모 문화주택단지가 건설되었다. 장충동2가 189-13주택은 그 과정에서 건설된 주택이다. 문화주택은 서구식 외관과 공간구조를 갖춘 위생적이고 경제적인 주택으로, 전통주택과 달리 수도와 난방 등 근대적 시설을 갖춰 생활의 편리성이 보장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1920년대 일부 도입되기 시작한 문화주택은 193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문화주택 단지의 조성과 함께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장충동과 신당동이 대표적인 문화주택 단지였으며, 문화주택은 광복 이후에도 낙후된 취락구조 개선을 위한 모델로 제시되었다. 장충동2가 189-13주택은 1930년대의 문화주택을 허물고 1960년대에 새로 건축한 것이다. 광복 이후 문화주택의 일반적인 모습을 간직한 주택으로, 서울의 주거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역사정보 1960년대 건축
시대분류 현대/1960년대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4길 7-11(장충동2가 189-13)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시작일(발생일) 1960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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