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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05 / 관훈동 민씨 가옥
* 명칭 관훈동 민씨 가옥 이명칭 관훈동 이진승 가옥,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개요 대한제국의 고위관료를 지낸 민영휘(閔泳徽, 1852~1935)가 소유했던 전통가옥으로 원래 관훈동에 있던 것을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하였다. 원래 6동의 목조 기와집과 2층 양옥에 안채, 사랑채, 별당채, 대문간채, 행랑채가 들어서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등 일부만 남아 있다. 규모와 내부구성에서 조선 말기 서울 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명 관훈동 민씨 가옥은 조선 고종 때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대부호이자 고위 관료를 지냈던 민영휘가 소유했던 여러 저택 중 하나이다. 원래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에 있던 것을 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 복원하였다. 민영휘는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친척이자 조선 말기 여흥민씨(驪興閔氏) 가문의 중심인물로서 중추원 의장, 헌병대사령관 등 고위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또한 일제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은 ‘조선귀족’이기도 했다. 그가 1890년대에 관훈동 일대의 넓은 토지와 주택을 매입한 후 일가친척들과 함께 거주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된 관훈동 민씨가옥은 그 저택 중 일부이다. 당초 민영휘가 소유했던 관훈동 저택은 서울 8대가(八大家) 중 하나로 꼽혔으며, 1936년 당시 총 6동의 목조 기와집과 2층 양옥이 있었고 안채, 사랑채, 별채, 대문간채, 행랑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6년에는 가옥의 상당 부분이 멸실되고 안채 일부와 문간채 등 목조 기와집 2동만 남아 있었는데, 이 가옥이 1977년 3월 17일 서울시 민속문화재 18호로 지정되었다. 민속문화재 지정 당시의 명칭은 ‘관훈동 이진승 가옥(寬勳洞 李進承 家屋)’이었다. 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 복원하면서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駙馬都尉 朴泳孝 家屋)’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러나 이후 이 가옥이 박영효의 가옥이 아니라 민영휘의 저택의 일부로서 그 후손들이 1970년대까지 거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2010년 9월 30일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 가옥은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 복원하면서 안채의 건넌방 쪽을 되살렸고 사랑채와 별당채를 새로 지었다. 사랑채 뒤로 안채와 별당채를 구성하였으며, 담과 문으로 적절하게 공간을 나누었다. 안채는 ㄱ자형 몸채에 一자형 행랑간이 붙어 ㄷ자형으로 되어 있다. 부엌과 안방이 같은 방향을 보고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개성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형으로 서울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장대석을 사용한 기단, 칠량가(七樑架, 도리가 7개 있는 지붕구조)와 6칸 크기의 부엌 등에서 대저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건물 요소요소에 섬세한 나무조각을 한 것이나 문양이 새겨진 벽돌을 사용한 점 등은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것으로, 조선 말기 최상류층 저택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역사정보 1870년대 건축 1890년대 민영휘가 매입 1977 서울시 민속문화재 18호로 지정(당시 명칭은 관훈동 이진승 가옥) 1998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이라는 명칭으로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개장 2010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
시대분류 조선/1870년대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고가옥, 관아건축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필동2가 84-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시작일(발생일) 18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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