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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500 / 가산 터
* 명칭 가산 터 이명칭
개요 가산(假山) 터는 청계천(淸溪川)을 준설(浚渫)할 때 파낸 흙이 쌓여 만든 가산이 있었던 곳이다. 1760년(영조 36)과 1833년(순조 33)에 대규모의 준설작업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청계천 주변 여러 곳에 가산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설명 청계천(淸溪川)은 서울특별시의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이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동대문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청계천을 건너야 하는데, 청계천을 건너는 다리가 오간수교(五間水橋)이다. 동대문에서 오간수교 다리를 건너다 보면 다리 옆 우측에 잔디밭이 있다. 잔디밭 중앙의 표지석에 가산(假山) 터라고 되어 있는데, 가산이라 함은 말 그대로 ‘가짜 산’이라는 뜻이다. 가산은 바로 영조(英祖)와 순조(純祖) 때의 대대적인 준설작업 후 청계천변에 쌓아놓은 흙이 크게 산을 이룬 데서 나온 말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1773년(영조 49)에 청계천 준설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리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18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한양도성도〉에는 가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개천은 일제강점기에 이름이 청계천으로 바뀌고, 도시계획에 따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다. 광복 이후 청개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도로를 놓았으나 교통안전과 도시미관을 위하여 2005년 하천을 다시 복원하였다.
역사정보 1760 조선 영조 청계천 준설 1833 조선 순조 청계천 준설 2003~2005 청계천 복원
시대분류 조선/1760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18-214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시작일(발생일) 1760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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