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상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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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정보 | JGH_000496 / 부민관폭파의거 터 | ||
* 명칭 | 부민관폭파의거 터 | 이명칭 | |
개요 | 부민관(府民館)은 경성부(京城府)가 1935년에 경성전기주식회사(京城電氣株式會社)로부터 100만원의 기부금을 받아 건립한 부립(府立)극장으로, 지금의 서울시 중구 태평로1가에 소재하고 있었다. 부민관폭파의거(府民館爆破義擧) 터는 1945년 7월 24일 애국청년 조문기(趙文紀)·유만수(柳萬秀)·강윤국(康潤國) 등이 부민관을 폭파해 박춘금(朴春琴) 일당의 친일행사를 무산시킨 의거가 일어났던 곳이다. | ||
설명 | 현재 서울시의회 건물로 쓰이고 있는 부민관(府民館)은 본래 1935년 일본 경성부(京城府)가 건립한 부립극장이었다. 부민관은 연건평 5,676㎡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다목적 회관으로서, 1,800석의 관람석과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대강당을 비롯하여 중강당·소강당 등에서 연극이나 음악, 영화 등을 공연하였다. 그 밖에 담화실·집회실·특별실·식당·이발실 등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어 극단들의 공연을 비롯해 중요한 집회나 강연회 등이 자주 개최되었던 곳이다. 1945년 7월 24일, 부민관에서 1급 친일민족반역자 박춘금(朴春琴)의 주도하에 일본, 만주, 대만, 조선 등 동아시아 각국의 친일부역자들이 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애국청년 조문기(趙文紀)·유만수(柳萬秀)·강윤국(康潤國) 등이 부민관 폭파계획을 수립한 뒤, 대회진행 당일 친일연설을 하는 연단에 사제 폭탄 2개를 투척하여 회의 자체를 무산시켰다. 이 의거는 8·15광복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항일의거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끝까지 표현한 민족독립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부민관 건물은 광복 후 미군정이 접수해 임시로 사용하다가 1949년 서울시 소유가 되었고, 1950년 4월 29일 국립극단이 창단되면서 국립극장으로 지정되었다. 부민관은 1950년 서울 수복 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다가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준공됨에 따라 시민회관으로, 다시 1976년 세종문화회관 건립과 동시에 그 별관으로 이용되었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지금은 서울특별시의회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2002년 5월 31일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그 앞에는 1995년에 설치된 부민관폭파의거(府民館爆破義擧) 터 기념 표지석이 있다. | ||
역사정보 | 1945 부민관폭파의거 1995 기념 표지석 설치 | ||
시대분류 | 일제강점기/1945 | ||
주제분류 | 문화/유적지, 사적지/독립유적지 | ||
지번주소 | |||
도로명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5(태평로1가 60-1) | ||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 ||
시작일(발생일) | 1945년 |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