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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90 / 진고개
* 명칭 진고개 이명칭
개요 진고개[泥峴]는 옛 중국대사관 뒤편에서 세종호텔 뒷길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8가길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현재 충무로의 옛 지명이기도 하다. 남산 기슭에 있던 이 고개는 높지는 않지만 흙이 몹시 질어서 통행에 불편을 주어서 진고개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설명 진고개[泥峴]는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전 중국대사관 뒤편에서 세종호텔 뒷길에 이르는 고개로, 남산의 줄기가 뻗어 내려와 형성된 얕은 고개를 일컫는다. 원래 진고개라는 명칭은 이 고갯길의 흙이 몹시 질어서 비가 내리면 남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범람해 지나다니기에 곤란하여 붙여진 것이다. 진고개는 현재 충무로 일대를 말한다. 충무로는 일제강점기에 본정통(本町通)이라 칭하던 도로로, 1946년 10월 1일 일본식 지명을 우리말로 개정할 때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忠武路)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그 이유는 충무공 이순신의 생가가 이 부근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진고개 일대를 남산골이라고 불렀으며, 이 지역에는 주로 하급관료인 아전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갑신정변 이후로 일본인들의 주거지가 늘어나면서 일본에서 들여온 근대적 상품들이 선보여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은 특권계층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평판을 얻으며 일부 조선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진고개 일대는 길이 불편하고 질어 1895년(고종 32)과 1906년에 2.4m 가량의 깊이로 파내어 진고개의 높이를 낮추고 길을 닦아 신식 도로를 만들었다. 이때 직경 1.5m의 하수관을 묻어 이 지역의 하수를 통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서울 시내 하수구의 시초가 되었다. 1920년대에 일제가 서울을 개발하면서 이 일대를 번화가로 조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진고개는 깎여나가 평지가 되면서 고개는 사라지게 되었다. 고개가 없어진 뒤에도 한동안 명칭은 그대로 남아 쓰였지만, 충무로나 명동 등의 지명이 대세가 되면서 점점 잊혀져갔다. 지금은 주변 음식점의 상호 명칭으로나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도이다.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8가길 32에 기념표지석이 있다.
역사정보 1906 진고개 일대 하수시설 설치 1946 가로명 제정(충무로)
시대분류 미상/미상
주제분류 자연 및 생태 환경/자연경관/고개(언덕)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8가길 32(충무로2가 62-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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