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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44 / 장충동1가 91주택
* 명칭 장충동1가 91주택 이명칭 장충동1가 문화주택
개요 장충동1가 91주택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문화주택으로 장충체육관 맞은편 언덕의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1,408.3㎡의 대지에 지어진 석조주택이다. 1930년대 일본인의 주거문제 해결과 서울의 인구과밀을 해결하기 위한 토지구획정리사업 과정에서 장충동 일대에 문화주택지구가 조성되었다. 장충동1가 91주택은 일제강점기 서울의 대표적인 상류층 주택으로, 다른 문화주택과 달리 넓은 대지에 석재를 주자재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설명 장충동1가 91주택은 일제강점기 건축된 문화주택으로, 면적 1,408.3㎡의 대지에 지어진 석조주택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0길의 장충체육관 맞은편 언덕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문화주택은 일본의 주택형태 중의 하나로 응접실이나 현관에 도어를 달아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주택으로 1920년대부터 유행하였다. 문화주택은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가져온 도시과밀화를 해소하고, 전통주택의 비경제성과 비위생성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부각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서울 역시 인구과밀화 문제와 함께 주택문제가 대두되었다. 특히 서울에 근대적 기관들이 들어서면서 새롭게 성장한 중상류층에 대한 주택 공급이 필요해졌다. 주로 일본인들이었던 이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제는 1921년, 1934년, 1938년 3차례에 걸쳐 문화주택 단지를 조성하여 분양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1936년 서울의 시역을 확장하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진행하는 등 대규모 주거지를 개발하였다. 상업화된 문화주택이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서울에 일본인 인구의 유입 및 도시과밀화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장충동의 공동묘지가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대규모 문화주택단지가 건설되었다. 장충동1가 91주택은 그 과정에서 건설된 주택이다. 문화주택은 서구식 외관과 공간구조를 갖춘 주택으로, 전통주택과 달리 수도와 난방 등 근대적 시설을 갖춰 생활의 편리성이 보장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1920년대 일부 도입되기 시작한 문화주택은 193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문화주택 단지의 조성과 함께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장충동과 신당동이 대표적인 문화주택 단지였으며, 문화주택은 광복 이후에도 낙후된 취락구조 개선을 위한 모델로 제시되었다. 장충동1가 91주택은 일제강점기 서울의 상류층 주택으로, 여타의 문화주택과 달리 넓은 대지 위에 석재를 주자재로 사용한 석조건물이다. 이 건물은 아울러 초창기 문화주택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한 집으로, 서울의 주거문화사에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역사정보 1930년대 건축
시대분류 일제강점기/1930년대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20길 45(장충동1가 9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1가
시작일(발생일) 1930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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