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상세 | |||
---|---|---|---|
관리정보 | JGH_000488 / 구리개 | ||
* 명칭 | 구리개 | 이명칭 | |
개요 | 구리개(仇里介)는 을지로(乙支路)1가와 을지로2가 사이에 있던 얕은 고개로, 을지로 입구의 옛 지명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황토 흙으로 된 고개가 땅이 질고 구리빛이 난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한자로는 동현(銅峴)이라고 하였다.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90 일대에 해당한다. | ||
설명 | 구리개(仇里介)는 을지로(乙支路)1가와 을지로2가 사이에 있던 얕은 고개로, 이 고개가 매우 질어서 누런색의 구리처럼 보여 구리개라고 불린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자로는 동현(銅峴)이라고 하며, 을지로 입구의 옛 지명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90 일대에 해당한다. 조선 정조(正祖) 때의 《한경지략(漢京識略)》을 보면, 동현을 보통 구리개라고 하고, 보은단동(報恩緞洞)과 마주 있는 마을을 구름재라고 하는데, 그 까닭은 구리와 구름이 방언에서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다시 한자로 음역하여 운현(雲峴)이라고도 하였다. 구리개는 일제강점기에 구리개와 뜻이 통하는 황금정(黃金町)으로 바뀌었으며, 광복 후 1946년 10월에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성을 따서 을지로로 개칭되었다. 이곳을 통과하는 을지로는 서울시청 앞에서 을지로7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앞까지의 도로로, 1910년부터 몇 차례 개수과정을 거치고, 1954년 서울역에서 신당동에 이르는 도로를 확장하여 지금에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구리개 일대는 혜민서(惠民署)·장악원(掌樂院)·훈련원(訓練院) 등의 관청이 소재하고 있었고, 시전(市廛)이 있었으며, 가내수공업이 성하던 지역이었다. | ||
역사정보 | 조선시대 을지로 일대의 지역을 구리개라 부름 일제강점기 황금정(黃金町)이라 불림 1946 을지로1가~을지로7가 동명제정 | ||
시대분류 | 미상/미상 | ||
주제분류 | 자연 및 생태 환경/자연경관/고개(언덕) | ||
지번주소 | |||
도로명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90(남대문로2가 5-3) 일대 | ||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2가 | ||
시작일(발생일) | 미상 |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