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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72 / 홍엽루 터
* 명칭 홍엽루 터 이명칭
개요 홍엽루(紅葉樓) 터는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자 서화가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지은 정자 홍엽루(紅葉樓)가 있었던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남산의 자연경관을 화폭에 담기를 즐겼다.
설명 강세황(姜世晃)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 서화가로 본관은 진주, 자는 광지(光之), 호는 표옹(豹翁)·노죽(路竹)·표암(豹菴) 등을 썼다. 서울 남부 남소동 출신으로 벼슬은 예조판서에 이르렀으며, 만년에는 남산 아래인 지금의 회현동과 종로구 동숭동 등지에서 살았다. 시·서·화의 삼절로 불렀으며, 식견과 안목이 뛰어난 사대부 화가로서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예서·전서를 비롯한 각 서체에도 뛰어났다. 홍엽루(紅葉樓) 터는 강세황이 홍엽루(紅葉樓)라는 정자를 짓고 남산의 자연경관을 즐겨 화폭에 담았던 곳이다. 남산은 조선의 도읍으로 정할 초기부터 〈도성십영(都城十詠)〉 가운데 남산의 옛 이름을 딴 〈목멱상화(木覓賞花)〉라는 시가 있을 정도로 풍광이 뛰어났다. 그리고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도 남산의 뛰어난 풍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예로부터 많은 사대부들이 저택과 정자를 마련하여 독서와 풍류를 즐겼다. 그중에서도 특히 현재 필동 막바지의 골짜기인 청학동(靑鶴洞)은 도성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다. 이 마을에는 중종 때의 문신으로 청학도인(靑鶴道人)을 자칭하던 문장가 이행(李荇)이 살면서 자주 시회(詩會)를 벌였다. 또 그의 증손인 이안눌(李安訥)도 지금 동국대학교 경내에 해당하는 곳에 단을 쌓고 석주(石洲) 권필(權韠)·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 등 당대의 문장가들과 시회를 즐겼는데, 근래까지도 그의 현손 이주진(李周鎭)이 각석(刻石)하여 기념한 ‘동악선생시단(東岳先生詩壇)’의 각자가 남아 있었다. 이렇듯 남산기슭에는 홍엽루 말고도 천우각(泉雨閣)·쌍회정(雙檜亭)·화수루(花樹樓)·재산루(在山樓)·귀록정(歸鹿亭)·녹천정(綠泉亭) 등 수많은 정자들이 있었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조선/1700년대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2가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2가
시작일(발생일) 1700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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